법조공화국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의 앞표지에 있는 글, 또한 책을 열면 맨 앞장에 나오는 말이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이 말이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과연 그런가?
저자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 책 전편에 걸쳐 논증하고 있다.
해서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제2장 ‘소용돌이 사회’가 만든 법조 특권주의
제3장 ‘서울대 법대 정치인’은 왜 실패하는가?
제4장 왜 ‘전관예우’는 사라질 수 없는가?
제5장 유사종교적 현상이 된 전관예우
제6장 국민적 신뢰도 추락에 둔감한 사법부
맺는말 :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넘어서
정말이지 우리 사회가 법조인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을 저자는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실명이 많이 등장한다.
좋은 의미, 또는 나쁜 의미로든 실명이 자주 등장한다.
김두식, 이름 기억해놓고 읽어보자.
김두식은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로 근무한 바가 있다. 그의 고백에서 의미있는 발언이 있다. 옮겨본다.
검사를 그만두고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다.
네 이모가 그러더라. 두식이가 검사하는 동안 애가 좀 이상해졌나 생각했다고. 젊은 애가 왜 늘 뒷짐을 지고 걷는지, 어른들을 모신 자리에서 왜 늘 중심에 있으려고 하는지. 쟤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검사가 되더니 아예 영감노릇을 하려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48쪽)
문제는 김두식 검사만 그랬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또 문제가 연이어 발생한다.
그런 특권의식에 찌들어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계로 들어섰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자는 그 문제에 대하여 <제3장 ‘서울대 법대 정치인’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살펴보고 있다.
서울대 법대 정치인은 왜 실패할까?
2010년 1월 25일에 발표된 칼럼 한 토막 읽어보자.
서울대 법대 교수 김증한의 발언이 소개되고 있다.
법과대학이란 똑똑한 아이를 데려다가 바보 만들어 내보내는 곳이다. (68쪽)
컬럼을 쓴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은 그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어떤 의미인줄 몰랐다 한다.
그 컬럼의 후반부에 김주필은 이런 말로 그 의미를 찾아낸다.
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양심을 제대로 발동하기 위해 법을 다루는 사람은 보다 많은 지식과 깊은 경험과 넓은 상식을 지녀야 하는데 법대생들은 오로지 사전적 지식에 매달리는 사태를 김교수는 걱정한 것이다. 그가 말한 ‘바보’는 법을 다룰 자격이 없는 인간적 장애를 의미한 것이었다. (69쪽)
서민의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영감’대우만 받아본 사람들이 법을 다루고 집행한다. 그러니 법이 일상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다시 정리해보자.
세상의 이치와 삶의 가치, 교양과 상식,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출세를 향해 매진하는 젊은이, 고등고시를 인생의 유일한 지름길로 여기는 학생들이 결국은 인간적으로 불완전한, 공부만 잘하면 만사가 형통이라는 오류에 빠진 외골수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69쪽)
그런 경계는 어디 법대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다른 전문직종에서 나름 성공했다고 이제는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전문직에서 성공했다고, 거기에서 얻어낸 성공의 법칙이 정치에서 그대로 통용된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렇게 정치판에 들어왔다가 망신만 당하고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런 소제목은 그래서 두루두루 통하는 명언이 되는 것이다.
법조인들의 ‘확고한 기준’에 대한 두려움 (69쪽)
‘현실, 특히 낮은 곳을 모르는 무지와 무식 (73쪽)
이런 지적은 그래서 유효하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의 발언이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 관계, 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위기다. (85쪽)
이 글의 서두에서 실명이 자주 등장한다고 밝혔는데, 그 중에서도 나쁜 의미로 실명이 등장하는 경우, 바로 이런 것이다.
무식의 여부와 정도는 출신 학교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시간이 흐를수록 윤석열의 ’무식‘에 놀란 사람이 많았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울 게다. (87쪽)
솔직히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말을 듣는다는 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대통령이 그럴 리가 있나, 라고 항변하고 싶은 정도다.
그러나 이런 말을 저자가 하는 것, 거기에 토를 달 수 있을까?
2022년 3월 9일 드디어 서울 법대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서울 법대를 위해선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87쪽)
다시, 이 책은?
실상 이 책은 바로 그런 법조인 때문에 쓰여진 것이다.
법조인 출신이 장악한 한국 정치판 (21쪽)
서두부터 법조인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정치판에 들어온 법조인들이 하나같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 아닐까?
이 책에서 몇 번이나 읽고 읽어야 할 부분이 있다.
<윤석열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192쪽 이하의 글이다.
대다수 국민에겐 청천벽력 같았던 12.3 비상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걸 따져 묻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193쪽)
이제 와서 그걸 물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라는 발언은 하지 마시라. 그런 의문은 불필요하다. 우리 속담에 분명하게 있지 않은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참! 그런 속담은 법전에는 안 나온다. 혹시 법조인 중에 법전에 없으니 들은 바 없고, 읽은 바 없으니 그런 속담 모른다고 할까봐 노파심에서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