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정착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 『걸리버 정착기』의 앞표지 하단에 이런 문구가 보인다.
세계 최초의 AI 패스티시 소설!!
*원작의 조각을 짜 맞추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양식
이 책이 표방하는 바, 패스티시 소설이라는 것이다.
패스티시라는 말을 처음 듣는지라,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몇 가지 인용해 둔다.
<패스티시(Pastiche)란 여러 작품의 표현들을 한 작품에 긁어모은 혼성모방(상호 텍스트) 표현을 말하며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잡다하게 혼합되어 있는 상태 이를테면 여러 가지 헝겊 조각들을 주워 모아 만든 누더기 옷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패스티시는 모더니즘 시대 이 후 사용되는 창작 방식 중 하나이며 타 분야의 이미지 혹은 모티프, 에피소드 등 그 자체를 훼손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고 혼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 텍스트가 가지는 의미는 상실되며 작가 주관적 각색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로 재편성된다. 이는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텍스트나 사회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제거된 완전히 새로운 개체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말도 있다.
패스티시는 흔히 패러디(parody)와 비교된다. 패러디는 다른 작품의 내용이나 양식을 빌리되 특정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 의식을 갖고 있는 데 반해 패스티시는 목적의식 없이 다른 작품들의 요소를 단순 나열한다.
그런 개념에 의거한다면, 이 책은 과연 패스티시의 어떤 면이 드러나는 소설인가?
이 소설은 단순 모방인가, 또한 목적의식이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집어들고, 먼저 든 생각이 그런 것들이다.
저자가 이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우리는 알고 있다. 걸리버가 기이한 나라를 다녀왔다는 것을. 그런 여행담을 담아낸 것이 『걸리버 여행기』다. 저자는 그런 걸리버의 여행기를 이어쓰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걸리버 정착기』니까, 당연히 어떤 나라 혹은 땅에서 이제는 더 이상 여행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행을 떠난다.
도착한 곳은?
이름도 기발한 나마네 섬이다. 신비한 섬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저자는 이미 이름 속에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나만에’, ‘나마네’
이런 경우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살펴보았다.
This is the Republic of Namener. (101쪽)
영어로 읽어보면 그런 의미가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우리말로 읽으면 그 의미가 드러난다.
그 섬에서 걸리버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35쪽)
또한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데, 그건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다 같은 얼굴 그것도 걸리버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걸리버가 그런 현상을 보고 놀라는 게 당연한 일이다.
내가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온 세상에 내 얼굴들이 가득해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35쪽)
그곳에서 걸리버는 어떤 일들을, 현상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그런 만남을 통해 걸리버는 과연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위해 세심하게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첨단 기술과의 만남 (36쪽)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 똑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만나다.
그리고 도아조와 만난다. (46쪽)
이 이름 역시 우리말로 읽으면 바로 그 의미가 다가오는데, 영어로 하면?
Gulliver left the quiet platform with the man. The man introduced himself as Door Joe and began to explain the Republic of Namaner to Gulliver. (114쪽)
도아조는 우리말 이름인데 영어로 하면 Door Joe 가 된다.
글쎄, 그런 이름보다는 오히려 그 뜻을 우리말 식으로 유추할 수 있도록 Helpoo 정도면 어떨까 싶다. help you를 약간 변형하여 helpoo.
아니면 저자가 영어의 ‘존 도(John Doe)’에서 Door John 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신원이 불분명한 남성을 가리키는 말인 John Doe.
그렇게 도아조의 도움을 받아 걸리버는 나마네 섬을 점점 알아가게 된다.
걸리버는 결국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나마네의 정신은 이것이다.
시간을 두고 자신을 탐구하고, 당신만의 이름을 찾으세요. 그것이 바로 나마네의 정신입니다. (74쪽)
걸리버는 도아조의 도움을 받아 나마네 섬의 여러 곳과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 것의 결론이 나마네의 정신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17화를 거쳐가는데 그런 나마네의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 도아조의 조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런 걸리버의 질문에 도아조의 대답은?
당분간은 사람 많은 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흉내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나마네에서는 모방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특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를 관찰하고, 당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렇게 하면 당신만의 특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74쪽)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 <에필로그>에서?
그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다시, 이 책은?
이 책 『걸리버 정착기』의 기본 발상은 대단하다.
걸리버가 분명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정착해서 살았을 것인데, 그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작품으로 가능할 것이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 걸리버가 나마네 섬에서 자신을 찾아, 이제는 여행을 마치고 정착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데, 과연 그가 제대로 정착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그는 이제 마악 정착의 첫발을 떼었을뿐이니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