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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리님의 서재
  • 좋은 엄마보다 괜찮은 나로 살기로 했다
  • 이도연
  • 17,000
  • 2025-09-22
  • : 50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다. SNS의 파편화된 피드에 자신의 일상을 끊임없이 던져 넣고, 찰나의 자극적인 문장들에 열광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어내리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진실한 글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년간 부모교육 현장에서 만난 이도연 작가의 언어 역시, 깊이 있는 사유보다는 자극적인 단문이 익숙한 현대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반영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얇고 읽기 쉬운 책이라는 형식 속에 자신의 경험을 단일 주제로 뚝심 있게 꿰어냄으로써, 보통의 에세이가 빠지기 쉬운 산만함과 과시적 오류를 피해 갔다. 이는 칭찬받아 마땅한 성취이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이 책은 글쓰기의 본질을 실존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현대 부모들의 간절한 질문에 작가는 "부모가 먼저 행복하면 된다"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이 문장은 부모 교육을 넘어, 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본질 밖의 욕망을 내려놓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절실함에서 시작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모범을 작가는 몸소 보여준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사회적 '쓰임새'로 증명하려 애쓴다. 부모는 좋은 엄마라는 역할로, 작가는 인정받는 글이라는 결과물로 스스로를 평가하며 불안해한다. 그러나 삶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순간 진정한 행복과 진실한 글쓰기가 시작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 지옥을 마주하는 행위이다. 자기 의심, 모멸감, 검열이라는 불길 속에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처절한 희생 제의와도 같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껴안고 폭망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가장 매혹적인 상태의 자신이 되는 자유를 맛본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주는 정신승리의 미학이다.

​공학도였던 저자는 작은 틈 사이 행복을 선택하는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고 말한다. 얇고 읽기 쉬운 책이 오히려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힘을 갖듯, 글쓰기 역시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틈'에서 피어난다. 30, 40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써 내려가는 몇 줄의 글, 황폐해진 사생활을 토로하는 솔직한 문장이 우리를 치유한다. 저자가 현장에서 "가르치면서 자신이 가장 많이 배웠다"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겸손을 넘어선 진심의 발로이다. 현장의 절실함이 문장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 '틈'은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나만의 고유한 앎의 공간이다. 같은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내 상태를 좋아지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실존적 의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틈을 가능성으로 바꾸어, 오늘을 더 나은 장면으로 만들어가는 실천이다. 특히, 이성적 사유에 익숙한 공대생의 관점에서 이러한 감수성을 끌어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후성유전학에 대한 적확한 이해를 부끄러운 듯 내비친 문장을 보며, 작가의 지적 통섭이 가져온 깊이에 주목하게 된다.

​다만, 전문가의 입장에서 감각과 감정의 뇌과학적 메커니즘을 보완하고, 이러한 기억들이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면 젊은 학부모들에게 보다 명확하고 발전적인 각성을 유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현대의 우리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나를 긍정하고 삶의 '틈'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길어 올리는 실존적 행위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써 내려간 글은 결국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의 절실함에서 시작되어 삶의 복합성을 껴안고 나아가는 가장 고귀한 정신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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