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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리님의 서재
  • 바다여 바다여 1
  • 아이리스 머독
  • 9,900원 (10%550)
  • 2024-12-16
  • : 4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마음속 바다처럼 출렁이는 질투가 어떻게 세상에 현상하는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은퇴를 앞둔 배우 겸 연출가 찰스 애로우비의 바닷가 은둔과 회고를 중심으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찰스는 과거 언론에 의해 거물로 묘사되며 런던의 화려한 연극계를 주도하다가 바다의 고요 속에서 지난 삶을 성찰한다. 그는 사랑과 질투, 죽음의 회한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에 휩싸이며, 과거에 사랑했던 하틀리와 그녀의 남편 벤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혼란에 빠진다. 찰스는 하틀리를 다시 얻고자 하는 망상에 휩싸이지만, 점차 자신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질투와 소유욕임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라는 사촌은 다른 길로 선을 추구하지만 역시 허영의 함정에 빠진다. 머독은 두 인물이 추구하는 선과 자유를 인간 관계의 복잡성 속에서 다루며, 타인을 인정하는 사랑을 통해서만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폴 발레리의 시집, '해변의 묘지'에서 따온 '바다여, 바다여'는 바다는 늘 정신적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상징으로 작용하여 생의 덧없음과 망망대해의 자유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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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묘지. 폴 발레리
기똥차다는 말은 기막히게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신박하거나, 신비로울 때, 감탄사처럼 사용되는 사투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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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머독은 선의 사태로서 '질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을 드러내는 철학적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주인공 찰스 애로우비의 질투는 첫사랑 하틀리에 대한 집착으로 시작되지만, 이 표면적 감정 아래에는 더 깊은 연민과 자기 기만의 존재론적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머독은 질투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아의 환상에 갇히는지, 그리고 그 환상이 타인을 인식하는 방식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절묘하게 파헤친다.

찰스의 질투는 단순히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소유욕을 넘어, 그것은 자신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가, 구원자, 통제자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권력에의 의지로 자리한다. 하틀리를 "구원" 하려는 그의 비현실적 집착은 사실 자신의 과거 영광을 재창조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머독은 이 과정을 찰스 자신을 페르세우스에 비유하며 자기 신화화는 질투가 어떻게 현실 인식을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머독의 철학적 배경을 읽고 난 뒤 읽은 작품이어서 그런지 '질투'를 플라톤적인 개념으로 확장시킨 소설에게 질투는 선(善)에 대한 왜곡된 추구라고 말하고 있었다. 찰스와 사촌 제임스는 각각 예술과 종교를 통해 선을 추구하지만, 둘 다 자신이 추구하는 선과 권력을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다. 찰스의 경우, 질투는 그의 예술적 천재성이라는 자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하틀리에 대한 질투를 순수한 사랑으로 오인하는데, 이는 자아의 환상이 도덕적 판단을 어떻게 흐리는지를 보여준다.

플라마리옹 목판화 그림에서처럼 질투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극단으로 몰아서 만든 '지옥'을 헤매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의 남자는 인간이 알고 있는 세상 이상을 봄으로써 과학자의 역함을 수행한다는 상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르트르의 "타인의 시선" 개념을 연상시키는 머독의 인식은 질투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타인과의 존재론적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찰스가 하틀리의 남편 벤을 향한 질투는 단순한 경쟁심을 넘어, 벤이 대표하는 '평범한 삶'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으로까지 확장되는데, 머독은 질투가 우리가 타인을 온전한 독립적 존재로 인정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즉, 질투는 인식론적 실패의 결과라고 말한다.

또, '바다여, 바다여'에서 보여준 질투는 심리학적으로 자기기만(self-deception)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찰스는 자신의 동기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합리화하고, 질투를 사랑으로, 집착을 헌신으로 가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점 더 자신이 창조한 지옥의 허상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머독은 찰스의 내레이션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질투에 빠진 인물의 인식적 왜곡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데, 찰스의 일기는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이 의식을 통해 자신을 속이는 자기 기만의 과정을 보여주는 정신분석학적 상담 기록처럼 읽혔다.

소설의 전환점은 찰스가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 아닌 질투와 불만, 분노였음을 깨닫는 순간에 발생하는데 이 깨달음은 단순한 감정적 변화가 아니라 인식론적 전환을 의미한다. 머독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독립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진단 내린다.

즉, 질투의 극복은 타인을 객체로 가스라이팅 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 인정하는 윤리적 행위를 실천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바다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는데,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서 차용한 바다는 죽음을 상징하는 '묘지'와 맞닿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는 존재의 순환을 의미하고, 질투에 사로잡힌 개인의 폐쇄성을 넘어선 의식적 세계의 열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찰스가 바다를 바라보며 평온을 찾는 마지막 장면은 질투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그의 정신적 변화를 상징한다.

아이리스 머독은 이 작품을 통해 질투를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본질적 한계와 연결된 현상으로 조명하였다. 그녀의 접근은 문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관점을 융합하여 질투가 어떻게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도덕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층적으로 분석한 뒤,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윤리학적 질문을 던진다.

책을 다 읽고, 6시간 동안 이 글을 쓰다가 문득 이 소설은 질투가 단순히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타인을 인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금 전 깨달았다. 머독이 제시하는 해결 방법, 즉 '타인을 온전히 인정하는 사랑을 통한 자아의 변형'이라는 형이상학적 진실을 꺼내 보여주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문에 새겨진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말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통설조차 거부한

'바다여, 바다여'는 질투라는 보편적 감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자유의 가능성을 통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다"라는 인식을 다시금 확인 시켜준, 철학적 문학의 걸작으로 인식케 하였다.


"결혼 생활은 두려움에 바탕을 두어야 지속이 되는 거야." 223p

찰스. 해보니까 알겠어. 사람들을 병신으로 만들고, 마음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하고 모든 기쁨을 짓밟기는 간단해. 당신 결혼을 난 못 참아, 찰스. 그 계집하고 결혼을 하거나 애인으로 삼는다면, 난 내 평생을 다 바쳐 훼방을 놓겠고, 그건 아주 쉬운 일일 거야." 157p

찰스, 흥미 있는 발견이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당황하게 하고, 괴롭히고, 얼이 빠질 만큼 겁을 주고, 비참하게 살도록 만들기란 너무나 간단해. 독재자들이 활개를 치는 게 무리도 아니지. 151p

질투란 아마도 강렬한 여러 감정 가운데 가장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각보다도 깊이 깔려 양심을 훔친다. 눈의 티처럼 그것은 항상 존재하며 세상을 더럽힌다. 125p

찰스, 난 지옥에 떨어졌다가 나왔는데,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가 않아요. 질투는 지옥이고 난 그 상처가 아물지를 않았어요.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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