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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ru님의 서재
  • 사냥꾼 이야기
  • 임정희
  • 16,020원 (10%890)
  • 2026-04-20
  • : 15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물건이 오랜 시간 사람 손을 타면 기묘한 어떤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 사이에 섞여 살면서 장난치는 일을 낙으로 삼습니다."


모두가 떠나 버린, 그래서 일명 '귀신 골목'이라 불리는 곳에 남은 단 두 사람. 헌책방을 운영하는 '홍사장'과 '술집' 주인 '고씨'. 그리고 가끔 헌책방을 찾아와 사연이 있는 듯한 골동품을 팔고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서방'까지. 평범한 듯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하루는 오늘도 깊어져 간다.




"도깨비라는 존재가 선사하는 변주와 매력"



소설의 시작은 참 묘한 분위기이다. 이미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골목에 불 켜진 단 두 곳의 가게. 그중 한 곳에서 서로 술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 이윽고 한 사람이 더 와서 한담을 나누다 문득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현실에 은근한 비현실이 가미된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또 희한하다.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럼에도 뭔가 단순한 두려움으로 점철된 이야기는 또 아니다. 이 책 속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 보면 어떤 한을 품고, 그래서 상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겠다는 생각으로,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존재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의 이야기라 보면서 마냥 무섭다기보다는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이웃처럼, 놀랍게도(?) 때로는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친근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그건 아니고 때때로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게 정도를 모르는 섬뜩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갭이 이야기에 변주와 매력을 더해주고 있달까.



[사냥꾼 이야기]는 총 일곱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제목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표제작인 <사냥꾼 이야기>를 비롯해 <김서방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등 '누군가', 그것도 단순히 인간이 아닌 존재의 이야기일 때도 있고, <옥탑방 이야기>, <갈대밭 이야기> 등 '어딘가'의 이야기일 때도 있다. 단순히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이 책에서는 더 많이 와닿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아니, 한때는 정말 익숙했지만 요즘은 다소 낯선, 과거의 존재가 되어버린 도깨비는 원래 오래 묵은 물건이 변신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야기, 물건에 깃든 존재의 이야기를 넘어서 장소 그 자체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듯한 세계관이 에피소드의 제목부터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심야괴담회? 한국의 아라비안나이트?"



소설의 초반은 아무래도 김서방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라서 그런지 방송 프로그램인 '심야괴담회' 혹은 '아라비안나이트'가 떠올랐는데, 묘하게 앞쪽에 비교적 섬뜩한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이 많이 녹아 있다 보니 조금 더 오싹한 한편, 도깨비의 존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거나 평소 생각하던 도깨비의 이미지와 조금 달라서 '과연 이 책 속에서 들려주고자 하는 도깨비의 이야기는 어떤 걸까..'라는 궁금증이 많이 들었다. 



소설의 중반은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을 만큼 책에 푹 빠졌다. 그 분위기조차 스포 하고 싶지 않아서 표현이 조심스러운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와닿았다. 익숙한 듯 느껴지는 이야기에 도깨비라는 설정이 더해지니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된 것처럼 매력적이었다. 등장인물의 감정 하나하나에 공감이 되며 몰입하게 되는 게 딱 한국인의 감성이라 좋았다.



소설의 후반은 이 책이 에피소드의 모음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엮인 한 권의 소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었다. 이제 정말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간의 분위기와 다른 듯하면서 긴장감 넘쳤다. 사실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할 뿐,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봐도 '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소설의 설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자아내는 방식이 탁월했다. 그간의 여러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딱 이 소설과 어울리는 마무리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한국형 미스터리 그 자체!"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개성 넘치고 묘사 하나하나가 생생해서 마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확실히 방송 작가로 오래 일한 작가님 다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세계관을 잘 구축해서 '한 권으로 끝내기는 너무 아쉽다..' 싶었는데 작가님께서 후속작을 집필 중이시라는 '작가의 말'을 보고 금세 아쉬움이 사라졌다. 심지어 이번 책이 '순한 맛'으로 느껴질 정도의 '진한 맛'이라고!



어린 시절에는 도깨비가 만화나 동화책 등으로 정말 친숙한 존재였는데, 지금은 도깨비라는 단어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봤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오래된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도깨비를 어른이 된 지금, 미스터리 소설 속에서 다시 만난다는 건 묘한 설렘이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 도깨비가 미스터리와 참 잘 어울려서, 정확히는 작가님께서 도깨비를 미스터리에 멋지게 녹여내주셔서 기쁘고 반가웠다. 내게는 그야말로 '한국형 미스터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냥꾼 이야기]였다.




무릇 도깨비는 생을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정을 주는 것, 도깨비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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