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영국의 평범한 구두장이 '네빌 보우트'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강제로 군함 '헐버트호'의 수병으로 징집된다. 군함과는 무관한 삶을 살던 네빌이었지만, 헐버트호에 탑승한 이후로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강제 노동 및 무차별적인 체벌에 시달리게 된다. 집으로 돌아갈 희망조차 없는 때에 헐버트호에서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프랑스군과의 교전까지 벌어지며 순식간에 배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범선 군함의 살인]은 시작부터 영리한 전개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네빌은 출산을 앞둔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어른을 배웅하다 장인어른의 제안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 조금만 마시고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시간이 흘렀고, 수병을 징집하러 온 이들에게 강제로 징집당한다. 장인어른을 배웅하지 않았다면, 술집에 가지 않았다면, 술을 조금만 마셨다면 피할 수 있었을 징집이었는데, 몇 번의 기회를 놓친 대가는 기약 없는 군함에서의 강제 노역으로 이어졌다. 네빌의 짧은 사연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군함 혹은 배에서의 생활에 대한 설명도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인 사연과 함께 진행되니 호기심도 들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네빌이 조금씩 군함에서의 생활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해나가는 걸 보며 '그냥 이렇게 네빌의 군함 적응기만 보여줘도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연이어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프랑스군과의 교전까지 벌어지며 그야말로 페이지가 순삭되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흥미로운 시대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인데, 거기에 '범선 군함'이라는 거대한 클로즈드 서클을 배경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라니 이건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아니, 사실 읽기 전에는 '이게 정말 재미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는데 어떻게 한순간도 재미없을 '틈'이 없었다. 여기에 범선 군함이라는 독특한 무대를 여러 가지로 잘 살리고 있다. 망망대해의 거대한 배 위, 도망칠 길이 없이 극한 상황에 몰린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행동 자체도 흥미롭고, 클로즈드 서클의 배경으로써의 역할도 훌륭하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장소 설정이 아니라 반드시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정말..... 어떻게 이게 데뷔작일 수가 있지? 하는 헛웃음 섞인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는 시대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시대 배경 소설을 술술 잘 읽히게 쓰는 작가는 드물고, 그래서 읽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이런 여러 가지 단점들을 극복하고 읽을 만큼 재미있는 책도 만나기 어렵다. 그런데 [범선 군함의 살인]은 단순한 시대물도 아닌 18세기,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영국의 범선 군함이 배경이다. 보기에는 작고 가뿐해 보이지만 무려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초반부터 범선 군함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정말 순식간에 몰입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그 몰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실 이 책의 미스터리적인 부분은 '후더닛'이나 '와이더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 '하우더닛'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해소되는 순간 다소 극적인 게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다 읽고 생각해 보니 이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극적이라서 오히려 덤덤하게 해소되는 게 더 극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 그 상황을 책에서 접하면 내가 느낀 감정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저는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어도 재미있다!는 감상이었을 것 같지만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지!? 하는 감탄만 거듭하게 만든, 너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이 소동을 촌극 구경하듯 바라보았지만, 자신도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