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연히 만난 남자가 건넨 무거운 캐리어"
시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에 부정적이다. 남편은 모든 것에 침묵한다. 딸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미사키'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직장뿐이다. 미사키는 직장에 가기 전 잠깐 들른 카페에서 만난, 아름답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니코'라는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이런 사정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니코는 미사키에게 아주 무거운 캐리어를 선물로 건넨다. 이를 집 안 어딘가에 소중히 놔두라는 말과 함께.
"'그 남자'에게 나도 홀려버린 것일까."
내가 적은,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한 "우연히 만난 남자가 건넨 무거운 캐리어"라는 문장을 보는 사람은 그 캐리어의 내용물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그 문장을 적은 게 '나'라는 것, 그리고 나의 취향을 아는 사람이라면 꽤나 무시무시한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나도 적고 나서 '어.. 이건 어째...' 하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의외로 내용물은 그렇게 무시무시하지 않다. 단, 그 내용물로 인한 결과는 어쩌면 내가, 그리고 저 문장을 본 사람이 상상한 것보다 더 무시무시할지도 모른다. 로카고엔의 소설 [죽음에 이르는 꽃] 속 일곱 개의 단편은 모두 이런 느낌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척하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아니, 이 책 내용에 딱 맞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잔혹하다'. 분명 잔혹한데 이상하게 끌린다. 어둡고 음습하고, 실상을 알게 되면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데 또 다음 이야기가 읽고 싶어진다. 일곱 편이나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이 잔혹한 이야기가 많이 남은 것 같으면서도 줄어가는 게 아쉽다. 책 표지의 아름다운 꽃이 흑백으로 표현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불길함은 이 책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먹으면 죽는 꽃'이라는 원제도, '죽음에 이르는 꽃'이라는 번역된 제목도, 표지의 흑백 꽃도, 구깃구깃 구겨진 듯한 표지 재질도, 하다못해 '로카고엔'이라는 낯선 울림을 지닌 -아마도 필명이겠지만- 작가의 이름도 이 책이 근본적으로 가진 듯한 기묘한 매력에 일조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한 방울 정도, '똑...'하고 떨어진 물감이 모든 것을 물들이듯 한 남자가 아주 살짝 영향을 미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 놀랍도록 섬뜩하다. 앞선 이야기에서 당연했던 것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뒤집히고, 또 그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뒤집힌다. 현실 같은데 비현실적이고, 호러의 느낌이 없는 것 같은데 차가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섬뜩함이 있다. 진실을 알면 알수록 추악해서 눈을 돌리고 싶은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책장이 넘어간다. 책 속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그 남자'에게 홀렸던 것처럼 나도 홀려버린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덫'"
앞서 언급한 미사키 외에도, 이 책의 각 이야기에는 현실이 힘겨운 인물이 등장한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남자, 아들이 사고로 죽은 후 하루하루 '죽어가는' 여자, 쌍둥이 여동생이 '짐'처럼 무겁기만 한 여자, 압도적인 재능 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보잘것없게 만 느껴지는 남자 등등..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되돌리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의 말은 하나같이 달콤하고 유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것이 설령 독을 품은 꽃이라고 해도, 그 꽃을 받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결말을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나 손을 내민다면 덥석 잡을 것만 같아서 두렵다.
[죽음에 이르는 꽃]은 그야말로 호러소설이다. '미쓰다 신조'나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처럼 논리가 곁들여진 호러 미스터리가 아니라, 정통 호러에 가깝다. 독자는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여기에 소설 전반을 감싸는 불유쾌한 공기까지 더해지면 딱 내가 안 좋아할 스타일인데, 문제는 이 책이 너무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진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무래도 제정신을 차리려면 다시 한번 '그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으니, 이 잔혹한 세계가 언제고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