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올레길을 걷는 것에 한참 빠져있던 나에게 다른 사람은 어떤 길을 어떤 생각을 하며 걸어왔나? 는 궁금증을 갖으며 본 책이었다.
처음 국내 여행을 해보려는 사람을 대상으로 여행의 감성적인 것에 디테일한 실용성을 더한 안내서이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루트나 숙박같은 요소를 자세히 알려주기 보다는 여행지의 감성적인 분위기와 대략적인 소개가 주를 이룬다. 새롭게 보인 것은 꼼꼼한 준비물 대한 안내이다.
여행지 소개에 여행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에세이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이 책을 그저 걷기의 입문서쯤으로 보기에는 아깝게 느낄 정도로 글솜씨가 좋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보다는 지친 몸을 치유하는 여행을 소개하는 여행서이기 때문에 여행지마다 부제목 같은 것이 붙어있다. (책 제목 앞에 붙어있는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과 맥락을 같이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프롤로그에 있다. 프롤로그를 유심히 보기를 권한다. 여기에는 걷는 거리와 시간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 잘 걷는것은 짧은 시간에 멀리,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나름 걷기 여행도 가고, 어딜 가든 걷는 것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방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내 걸음은 웬만한 남자걸음 저리가라 하게 빠르지만 중학교때에는 오빠가 20분만에 걸어온 하굣길을 나는 2시간 정도를 걸어서 다니던 때도 있었다. (엄청나게 느린 걸음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하셔서 핸드폰이 생길 정도였다.) 구름보다 멈추고, 개랑만나 멈추고, 또 멈추고... 매일 다니는 거리를 참 새삼스럽게 다녔던 것 같다. 그때처럼 주변에서 걱정하고 일정에 차질이 생길만큼 걷는게 좋은건 아니지만, 걷기 여행이란 많이 걷는 것 이상으로 찬찬히 느끼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감한다. 서문이나 머릿글은 잘 건너뛰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감성이 묻어나서 조그만 글귀까지도 꼼꼼히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시작 전에 ‘일러두기’라는 작은 주의가 있는데 저자의 감상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별로 여행지를 나누어 놓아 좋다. 걷기 좋은 계절은 가을이지만, 반대로는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에 가기 좋은 여행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여행지와 때에 따라 꼼꼼히 준비물을 따져준다. 어느정도냐면 음악과 가져갈 책까지 골라준다. 이 준비물을 완벽히 챙겨가란 소리는 아니겠지만, 저자가 그 공간에서 했던 느낌과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여 한번쯤은 따라 해볼 요량이다.
새롭고 좋은 길을 걸을 때에는 ‘여행자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이런 길을 더욱 걷고 또 걷고 많이 걷고 싶은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그 주변이 변하게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것은 안 좋은 쪽일 경우가 많다. 농경지를 망치고,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이 두서없이 들어서면 그전의 향취를 잃는다. 최대한 건들지 말자!
책 내용에는 저자의 지인이 부탁한 휠체어로도 걷기 좋은 길이 나와있다. 저자의 이 발견은 내게도 감동적인 부분이다. 할머니가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에 여행이 오로지 내 마음의 소리에 닿을 수 있기를. 이라는 글이 쓰여있다. 걷기여행은 확실히 삭막함을 보듬어준다. 그러나 책만 읽고 입맛만 다시다 끝나서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안의 삭막함은 그대로고 채워지지 않는 것 역시 여전하다. 이 (혹은 다른 여행지에 관한)책을 덮고, 설레이는 글귀와 멋진 사진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을 준비한다면, 아마 책을 가장 잘 읽은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