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은 그 메마른 시간들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벌집과 꿀>
17세기 일본, 19세기 연해주 그리고 현대의 어느 작은 소도시에서 뿌리를 잃은 채 부유하는 여러 존재들의 이야기가 폴 윤의 소설집에 담겨 있다. 이들은 모두 한민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태어났지만 전쟁 침략자에 의해 납치를 당해서 또는 이민과 탈출이라는 인생의 물결에 휩쓸려 지금 있는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이들이다. 이들 모두 늦가을 어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바싹 마른 잎들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 <보선>의 보는 자신도 모르게 장물 거래에 휘말려 교정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고, <코마로프>의 주연은 요원들의 제안으로 헤어졌던 아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역참에서>의 유미는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국으로 다시 가게 되었고, <고려인>의 막심은 자신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불안정한 삶의 길을 위태롭게 걷고 또 걷던 이들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운명의 강요대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을 수밖에 없다.
작가 폴 윤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존재했던 유랑민들의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피난민이었던 조부의 삶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장편소설인 《스노우 헌터스》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의 싹을 틔운 저자는 마침내 이 소설집으로 꽃을 피웠다. 특정 민족이나 국가만 이 문학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을 차분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정서와 고민으로 빚어낸 이 일곱 개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소란스럽게 질문하지 않는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작가는 몇 개의 문장만으로 인물들의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정착보다 이주에 익숙한 일곱 개 이야기들 속 인물들의 모습은 광장에서의 통곡이라기보다는 어느 작은 방에서의 침묵에 가깝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소설집의 중심인물들이 삶에 대한 체념과 포기가 아닌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누군가가 최후의 보루마저 상실한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벌집과 꿀>의 안드레이 불라빈은 고려인 정착지에서 한밤중에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다. 남편을 죽인 여자가 나무에 목이 매달려 죽게 되고, 열두 살 쯤 되는 부부의 딸만이 홀로 남게 된다. 자신의 근무지에 찾아온 소녀에게 찻잔과 벌을 이용한 선교사의 지혜를 알려주는 대화는 나침반이 없는 세상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게 해주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크로머>의 해리와 <역참에서>의 야마시타 도시오 역시 각각의 삶에서 만난 코를 심하게 다친 이름 모를 아이와 조선인 노예 유미라는 소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겨질 수 있었던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유대감은 어둠을 밝혀주는 강렬한 촛불이다. <달의 골짜기>에서 동수가 만난 고아들인 은혜와 운식, <보선>에서 카지노 동료 해리의 아이 그리고 <코마로프>의 노래하던 여자의 아이까지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여러 아이들은 메마른 시간을 지나왔다. 그 기나긴 터널을 지나며 어떤 아이들은 누군가가 내민 손을 간신히 잡았을 것이고, 또 어떤 아이들은 외면과 방관 속에서 홀로 버텨왔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경계선 위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헤매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조금 더 친절해지기를 조용히 희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