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미덕은 무엇인가? 삶의 풍경을 진실하게 담아내되, 그 안에 슬몃 숨어있는 가치를 찾아 빛을 비추는 것이다. 이금이 작가는 이야기의 미덕을 담은 소설을 쓰는 데 전력을 다한 것 같다. 버들, 홍주, 송화의 삶이 꾸밈 없는 아름다움을 발한다. 이 소설을 읽고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놀라운 몰입도’를 언급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소설은 백여 년 전,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간 버들과 홍주, 송화 세 여인의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버들의 눈으로 많이 묘사되었다. 주인공이 된 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녀와 동화되는 경험을 한다. 매봉산 자락을 벗어나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싶어 먼 타국으로 떠난 버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궁금해지고 그녀와 함께 울고 웃는 것이다.
영미권에서 권위(authority)라는 단어는 저자(author)에서 파생되었다. 자기 삶을 스스로 쓰는 이들, 그러니까 자기 삶의 저자는 자연스럽게 자기 삶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통해 버들은 권위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다른 이에게 잠깐 주인공 자리를 빌려주기도 한다.
📖이야기에 몰입된 서 노인은 풍을 맞아 말과 행동이 어줍어진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땅을 향해 가족을 이끌고 이민선에 오른 용감한 사내였다. (p.141)
비단 서노인뿐일까, 버들 홍주 송화뿐일까. 누구에게든지 자기 삶을 들려줄 기회를 준다면, 숨죽인 채 웅크리고 살던 모든 이들은 더이상 운명의 희생자가 아닌 개척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대상을 미워한다. 누군가의 사정을 진정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 삶을 미워할 수 없다.
📖그때는 옥화 모녀가 나타나면 돌 던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때리고서도 미안한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누구에게도 그들을 때릴 권리는 없었다. 버들은 송화 몸에 난 상처가 자신이 던진 돌팔매질 때문인 것 같았다. (p.188)
양반가의 버들, 평민이지만 큰 부잣집 딸 홍주, 무당의 손녀 송화. 신분의 벽이 우뚝 선 조선 땅에서 버들과 홍주는 송화에게 당연한듯 돌팔매질을 했다. 그러나 신분의 벽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곳에서 비로소 편견을 벗는다. 하와이로 가는 몇 달 동안 동고동락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알게 된다. 그 이후에 버들은 이전에 자신이 돌팔매질 했던 과거 행동에 죄의식을 느낀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송화와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버들, 홍주, 송화의 관계는 미화나 왜곡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버들과 홍주는 송화에게 돌팔매질을 한 적도 있고, 송화를 만난 초반에는 부엌데기마냥 대하기도 했다. 몇 달을 자매처럼 붙어 지내고 하와이에 왔는데 홍주는 자신의 남편은 다 늙고, 버들의 남편은 한참 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버들을 질투하며 눈에 띄게 쌀쌀맞게 굴기도 한다. 버들은 ‘송화 신랑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골치 아픈 일 생길까 봐 피했’다. 먼 타지에서 수 년을 함께하고도 박용만 파냐 이승만 파냐, 이념으로 갈라져 홍주는 버들을 계모임에 끼워주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버들과 홍주는 미안함을 느낀다. 홍주는 뺏어간 분첩을 멋쩍어하며 다시 빌려준다. 버들은 마음에 계속 걸리던 송화를 찾아갔고 석보 영감의 폭력에서 송화를 구한다. 그런 버들의 곁에서 송화 역시 입덧을 심하게 해 다 죽어가는 버들을 살뜰히 살핀다. 홍주는 그 다음 계에 버들 없이는 안 하겠노라 선언한다.
이렇듯 못난 얼굴도 다정한 얼굴도 가감없이 보여주니, 어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밖에도 이름에 담긴 뜻, 가족, 여성의 삶, 독립군, 이념 대립, 송화와 진주 등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만약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만나면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말미에 한 문장을 읽고 제목을 곰곰 되씹어 보았다.
📖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p.354-355)
알로하, 나의 엄마들.
알로하
이야기에 몰입된 서 노인은 풍을 맞아 말과 행동이 어줍어진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땅을 향해 가족을 이끌고 이민선에 오른 용감한 사내였다.- P141
그때는 옥화 모녀가 나타나면 돌 던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때리고서도 미안한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누구에게도 그들을 때릴 권리는 없었다. 버들은 송화 몸에 난 상처가 자신이 던진 돌팔매질 때문인 것 같았다.- P188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 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