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미술서적을 읽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는 미술이 어려웠던 걸까? 난해하고 알아보지 못할 것 같은 현대미술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미술 관하면 떠오르는 폐쇄성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가까이서 볼 수도, 만져볼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미술관의 분위기는 미술은 어렵고 무섭다는 생각을 꾸준히 갖게 만들었던 것 같다.
요즘이야 설치 미술도 많고,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미술도 많지만 여전히 미술관은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책의 초반에 그 부분을 언급했는데, 덕분에 속이 후련해졌다. 플래시만 켜지 않는다면 그림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 이유로 그림을 눈에만 담게 하는 것도 결국은 관람객들의 감상을 막는다는 사실.
사설이 길었지만, 미술 하면 세계 여러 곳의 미술관과 명작들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미술관이 없나?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없나?라는 생각을 한번 즈음해보게 된다.

그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국내 미술관을 소개해 준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미술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랐다. 내가 가본 미술관은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정도였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 시립미술관이나 부암동의 환기미술관,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조만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가 소개한 작품들 속에는 한시적으로 열린 전시회에 관한 내용들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반 고흐나 카리바조의 작품들의 경우 그렇다. 지금은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울 정도까지는 아닌 이유는 각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 중에도 보석 같은 그림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관심이 갔던 작품은 이상원 화백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작품이었다. 사진을 찍은 것처럼 군용트럭의 바큇자국이 눈밭에 새겨져 있는데, 이 그림의 의미를 알고 나니 더욱 눈에 들어온다. 군부독재 시절 군 트럭이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을 그린 이 그림은, 결국 국민들 탄압했던 그 시대를 떠올리도록 그려진 작품이란다. 그랬기에 바큇자국은 꼭 군용트럭이어야만 했다는 사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연해주 주립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서 실제로 볼 순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제일 깊이 와닿았던 그림 중 하나였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접했던 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데, 그녀의 한마디가 깊은 여운을 주었다. 한국전쟁과 남편의 죽음, 항생제 살 돈이 없어서 결핵으로 죽은 여동생 등 유난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던 천 화백은, 생태라는 작품을 그린다. 그 안에는 35마리의 뱀이 꿈틀거리고 있다. 왜 뱀을 그렸냐는 물음의 천 화백의 대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런 마당에 내가 어찌 향기 나는 백합을 그릴 수 있었겠느냐?
책에 나온 그림도 좋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미술관 주변의 경치도 또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과 촉각, 미각(카페도 많다.)까지 아우르는 미술관 여행을 한번 떠나봐야겠다. 그리고 저자가 소개해 준 그림뿐 아니라 저자의 아버지가 그랬듯 나만의 작품도 발견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