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부터 필사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필사로 한 해를 시작했었는데, 확실히 눈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직접 써보는 게 마음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래서 꿈을 종이에 그렇게 쓰라고 했나 보다.
몇 년 전부터 다산의 책 혹은 다산과 관련된 책을 종종 읽을 기회가 생겼다. 조윤제 작가의 다산 시리즈를 비롯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한국사에도 정조와 함께 등장하는 다산까지 만나보았다. 가끔 책을 읽다가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등장하면 내 노트에 필사를 하긴 하는데, 언제부턴가 그것도 그냥 서평에 타이핑하는 걸로 대체할 때가 많아진 것 같다.
내가 고른 문장도 좋지만, 직접 골라준 문장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시작에는 다산의 생애가 담겨있다. 다산의 삶을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은 좌절할 만한 상황임에도 그는 그 시간을 꿋꿋하게 채워갔다는 것이다. 40세부터 57세까지 17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그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그는 시대를 원망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유배 기간을 통해 다산의 많은 저서들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차마 그 시간 덕분에 다산의 주옥같은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다산은 어땠을까? 그는 여전히 공부와 저술을 계속해나갔고, 자신이 쓴 글을 고치고 완성했단다. 다시금 돌아온 현실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정계의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한 시간을 참았으면 이제는 많이 참았다 싶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좌절할 만도 하지만 다산은 그럼에도 현실을 묵묵히 수궁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처음에는 한 장 한 장 차례대로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날 그날 책을 넘기며 와닿는 문장을 필사하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은 꼭 그날 내가 겪었던 이야기나 힘들었던 내용일 때가 많았다. 덕분에 다산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쓰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고,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이 조금씩 늘어났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 현악기와 관악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악기들은 하나같이 외국 악기들인데, 그러고 보면 아쟁, 가야금(현악기), 대금(관악기)를 떠올리고 비로소 수궁이 되었다.

뛰어난 학자였던 다산인지라 그의 삶의 감정이 우리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그 역시 분노를 해결하기 어렵다 했고, 힘든 시간들은 그 자체로 힘들다고 고백했던 걸 보면 말이다. 만약 성인군자처럼 원론만을 이야기했다면 또 달랐겠지만, 다산의 글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와 같은 고민과 번뇌,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