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남들도 다 가지면 시들해지는 것을 우리는 욕망이라고 착각한다.
그것은 우월에 대한 갈증이다.
세계척학전집 7번째 주제는 서열이다. 계급은 없어진 평등사회라고 하지만 글쎄... 오히려 계급이 더 두꺼워진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자리에서나 자연스레 눈치를 보면서 내 위치를 찾아간다. 진짜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닐 수 있는데, 이게 계급이 높으면 괜히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책 안에는 계급과 그로 파생되는 감정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그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예가 등장한다. 가령 20세기 후반인 1986년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자존감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위원회에서는 자존감만 높이면 약물중독, 범죄, 임신, 학업 실패가 줄어들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자존감을 사회적 백신이라는 단어로 불렀다.
과연 정말 위원회의 이론은 실제로 검증이 되었을까? 스스로 아무리 대단하다고 여겨도, 아무도 나를 곁에 두려 하지 않으면 자존감은 오르지 않는다. 결국 자존감은 사회적 관계에서 올라간다는 것. 스스로 아무리 외쳐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는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이 소시오미터인데, 사회적 관계를 재는 계기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놀라운 것은 사람뿐 아니라 프로그램이 따돌려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 놀랍기만 하다. 근데 마음의 상처가 두통약으로도 해결된다? 된단다. 타이레놀로도...

브라운과 길먼의 호칭 정치학도 꽤 흥미로웠다. 우리 회사는 직급이 없다. 호칭은 닉네임이다. 대표도 닉네임, 지난달 들어온 직원도 닉네임. 모두가 닉네임으로 불린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다. 근데, 이게 자연스러워지니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확실히 건의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좀 수월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근데 또 한편으로 이 개념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했는데, 책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각 나라의 존댓말의 뿌리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유럽 라틴어의 복수형 vos를 황제에게 썼다는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은 황제가 둘이었단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vos는 황제를 넘어 윗사람에게도 쓰기 시작했다니 무슨 의미인 지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면 우리 회사의 닉네임 문화도 위에서부터 흘러왔을 거다. 이에 대한 제안은 누가 하느냐 역시 계층을 설명해 준다. 말을 놓자는 권리는 대게 위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런 면에서 평등조차 위에서 나온다는 이 개념에 씁쓸함이 더해진다. 말을 놓고, 닉네임으로 부르는 수평적인 문화조차 위에서 흘러나오는 것. 이후로 위계가 더 높아지진 않겠지만, 그럼에도이조차 위계였다는 사실이 비로소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영어권 회사에 위계가 없는가.
말투 대신 다른 장치가 그 역할을 한다.
누가 먼저 말하는지, 누구의 말이 중간에 잘리는지, 회의를 누가 끝내는지, 형태는 자리를 옮길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밖에도 능력주의에 대한 내용도 꽤 흥미로웠다. 능력주의의 공식이 있단다.
I + E = M
지능(Intelligence)+ 노력(effort) = 능력(Merit)이다.
영국 노동당 계열의 사람인 마이클 영은 이 능력주의를 영국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모임에 가져갔지만 거절당했다. 출판사에서도 거절당했다. 12번의 시도 끝에 겨우 책이 나왔다. 그리고 그 책 이후 능력주의라는 단어는 퍼지기 시작했다. 2001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이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마이클 영은 그에 대해 반박 글을 실었다. 이 능력주의는 보기에는 무척 평등하고, 무척 객관적인 의미같이 보이지만 이 또한 어느 순간 가진 자들의 능력을 표현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2020년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무척 와닿았다.
능력주의가 승자에게 자기 자리를 온전히 스스로 얻었다는 확신을 주고,
뒤처진 사람에게는 실패의 책임을 고스란히 돌린다.
위계와 계급, 서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평등과 수평을 의미하는 말조차 분해하면 다분히 서열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그 진짜 의미를 깨달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