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톨스토이는 평생 거울을 들여다본 사람이었고,
르누아르는 일생 창문 너머를 본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만나는 세계문화전집의 주인공은 레프 톨스토이와 오귀스트 르누아르다. 톨스토이와 르누아르. 한 사람은 문학계의 거장으로, 또 한 사람은 인상주의의 거장으로 후대의 강한 인상을 남긴 예술가들이다. 누구보다 좋아했던 작가 톨스토이와 얼마 전 인상주의 관련 책을 읽으면서 부드럽고 밝은 그림으로 각인된 르누아르. 하지만 이들 두 예술가를 묶인 제목은 놀랍게도 사생아다.
사생아라는 단어는 사실 어감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유복자와는 또 다른 느낌을 풍기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는, 혹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엄마 혼자 낳은 의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사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여럿 읽으면서, 르누아르가 모델 출신의 여류 화가인 수잔 발라동의 아들인 모리스 위트릴로의 생부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수잔 발라동은 모리스의 친부를 밝히지 않았고, 르누아르 역시 자신이 생부라는 사실을 부인했다고 한다.) 혹시 이 사생아가 모리스가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다른 인물의 이름이 등장했다. 잔 마르그리트 트레오. 르누아르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리즈 트레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톨스토이 역시 사생아가 있었다. 결혼 전 농민 여인인 아크시냐 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티모페이 예르밀로비치 바지킨. 이 두 거장의 딸과 아들이 사생아라는 제목으로 묶인 이유는 이 둘 다 두 자녀를 인정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다른 아들들과는 달리 폴랴나 영지의 마구간에서 평생 일꾼으로 생을 마쳤다.
또한 르누아르의 사생아 역시 노르망디의 위탁가정에서 자랐는데, 다행히 르누아르는 이 딸의 존재를 기억하고 평생 딸에게 돈을 보냈다고 한다. 적어도 톨스토이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톨스토이는 자신의 경험들(농민 여성과의 사랑, 사이의 태어난 아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 사용한 데 비해, 르누아르는 그 많은 아이들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신의 딸의 초상화는 한 점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인간적인 실망감이 컸다. 부드럽고 밝은 그림을 주로 그렸던 르누아르의 모습도, 종교적이 색채가 가득한 작품들을 여럿 썼던 톨스토이의 모습도 왠지 이중적인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들의 이런 모습에 과연 나는 마냥 돌을 던질 자격이 있나에 대한 생각 또한 하게 되었다. 저자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것일까? 그가 남긴 한 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만큼 정말로 완전무결한 삶을 살았는가?
세상은, 정말로 그렇게 단순한가?
이들을 비난할 자격은 적어도 이들에 의해 세상에 나온 아들과 딸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두 예술가의 삶 속에 등장했던 비밀 아닌 비밀을 알고 보니 작품을 보는 눈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자신의 삶을 거울로 비치듯이 작품에 투영시킨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 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타인의 모습만을 작품 속에 그려낸 르누아르. 과연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술을 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에 과연 사생아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가슴 한 편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답은 이 두 예술가 만이 알겠지만...
톨스토이는 평생 거울을 들여다본 사람이었고,
르누아르는 일생 창문 너머를 본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만큼 정말로 완전무결한 삶을 살았는가?
세상은, 정말로 그렇게 단순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