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가 표지 가득 담겨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날개에 눈이 갔다가, 뭔가 괴이함을 느낀다. 아직 마르지 않은 나비 그림인 걸까? 발개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감이 궁금함을 자아낸다. 또 하나의 괴이함은 나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 인간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인간 표본이라니...
도시를 떠난 산속으로 내려간 시로 가족. 심심하기만 한 시로가 선택한 놀이는 곤충 그중에서도 나비 채집이었다. 하지만 시로의 채집망에 들어간 나비는 다음 날이면 생기를 잃고 죽어있었다. 그런 시로의 모습을 엄마는 탐탁지 않아 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그림만 그리는 아버지 이치로가 아들 시로에게 말을 건 것은 나비로 표본을 만들어보자는 제의로부터였다. 가장 아름다운 때를 보존하는 것. 하지만 그 말은 나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치로는 손수 나비 표본을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마취약으로 나비를 기절시키고, 곰팡이가 생기는 부위를 떼어내고 방부액을 집어넣는 일련의 순서를 직접 시연하며 그렇게 시로는 나비표본을 만들어간다.
나비 표본과 함께 시로는 나비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학교 방학 숙제로 나비의 눈으로 본 꽃과 함께 박제한 나비를 붙이기로 한 것이다. 아들의 그림에 무척 만족하는 아버지 이치로는 근사한 액자를 제작해서 시로의 그림을 보관하기로 한다.
한편, 아버지는 한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이치노세 사와코라는 여성이었는데, 아버지와 같이 미술 공부를 했던 동기라고 했다. 큰 병에 걸린 그녀는 동창이자 초상화 화가인 이치로에게 자신의 그림을 부탁한 것이었다. 그림이 완성되고 사와코 가족이 시로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 부부에게는 딸 루미가 있었는데, 루미는 색상에 관해 무척 예민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 루미가 시로의 그림을 보자마자 그 그림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결국 시로는 자신의 소중한 나비표본이 담긴 그림을 루미에게 선물하고, 얼마 후 값비싼 카메라가 시로의 집으로 온다.
사와코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얼마 안 돼서 아버지도 사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루미와의 인연도 끝난 듯싶었다. 나비박사가 된 시로에게 다시 루미의 사연이 전해진 것은, 시로에 대한 기사가 난 후였다. 그렇게 다시 연락을 하게 된 시로와 루미. 하지만 왠지 모를 자존심에 루미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시로는 뉴욕으로 떠난 루미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결혼 소식과 출산 소식 그리고 배우자의 사망 소식까지 공유하게 된 루미가 다시 시로에게 연락을 한 것은, 시로의 아들 이타루가 미술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다. 과거 시로가 살았던 집을 산 루미는 그곳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재능 있는 아이들과 이타루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하겠다는 말을 한다. 다시 만난 루미는 과거 중병에 걸린 사와코와 닮아있었다. 루미 역시 불치병에 걸렸던 것이다.
아들을 데려다주러 간 곳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는 순간, 시로는 다시금 과거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표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나 둘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시로는 아이들을 닮은 나비표본을 담은 인간 표본을 만들고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책을 읽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의심스러웠다. 혐오 발언뿐 아니라 과거의 전적 때문에 결국은 산속으로 쫓겨온 아버지 이치로, 나비가 죽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표본 만드는 데만 열중하는 시로, 그리고 나비처럼 사원색을 볼 수 있지만 특이한 사고를 가진 아이들을 뽑아서 후계자를 삼으려고 하는 루미.
아버지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란 시로의 마음속에는 예술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자괴감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들을 돌봐주는 사람 덕분에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는 말은 기본적인 아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가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에 대해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루미와 딸 안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으로 보였던 이들의 관계 역시 절대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 사이코패스인가를 찾으면서 읽던 책의 결말 부를 마주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보다 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한편으로 나 역시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