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려 22,000km다. 명절마다 시댁에 내려가는데, 310km 정도가 된다. 안 막히고 가도 3시간 반 정도가 걸리고, 한참 막혔을 때는 7시간이 걸린 적이 있었다. 근데 무려 22,000km다. 그것도 은퇴한 70세 노부부와 일행이 자동차로 이 긴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에 매인 몸이자 아이들이 어린 관계로 장거리 여행은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책이나 여행 프로그램 등으로 달랠 때가 많다. 다양한 지역의 여행기도 흥미롭지만, 이 책이 궁금해진 것은 유라시아를 자동차로 횡단한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한참 배낭여행 붐이 불었기에, 이곳저곳을 걸으며 직접 체험한 여행기를 풀어낸 책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자동차 여행기는 좀 색다르다. 그러고 보니, 온 가족이 작은 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기를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자동차 여행기긴 하지만, 결이 다르다.
가족도 아닌 남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솔직히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마음이 편한 사람들과 해도 쉽지 않은데, 다 크다 못해 은퇴를 한 완전 어르신들의 여행기라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책의 저자 역시 의견 충돌이 종종 나서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이라면, 홍일점 역할을 한 저자의 아내 덕분에 큰 분쟁으로 번지지 않았다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책은 총 7개의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초반의 2장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 익숙한 지명들이 종종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만주와 연해주 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한 동포들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해 낯선 지역으로 떠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담겨있는 곳들을 차례로 다니며 그 땅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다방면의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해설이 곁들여지니 그 어떤 역사책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쌓인다.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많다.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지라, 이래저래 들어는 봤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자유시 참변이다. 정말 말 그래도 외우기만 했었는데, 참변이 일어난 도시인 스보보드니가 한국말로 자유라는 뜻이기에 자유시 참변이 된 것이었다.
책 안에서 기억에 남는 애용 중 하나는 고려인이라는 용어였다. 일행이 타슈켄트의 고려인 마을을 다녀왔는데, 이들은 연해주에서 1937년 강제 이주한 후손들로 현재 우즈베키스탄 인구의 2%가 고려인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즈흐스탄은 아이가 태어나면 호적에 출신 종족을 표기하는데, 부계의 혈통을 따른다고 한다. 즉, 아버지가 고려인이면 고려인이지만, 어머니가 고려인이지만 아버지가 비고려인이면 고려인이 아니라고 한다.
왜 하필 이들은 고려인이라 불리게 된 것일까? 원래는 북한에 가까운 지역이었던지라 북한을 의미하는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지만, 88올림픽을 통해 남한의 발전상을 깨닫고 조선이라는 북한을 상징하는 단어 대신, 고려인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동해항을 출발한 지 50여 일 만에 아시아 대륙을 넘어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도착한 이들의 여행기는 무사히 마무리가 된다. 솔직히 젊은 시절이야 패기로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70이 넘은 나이에 모든 것이 낯선 지역으로 50여 일 동안 쉬지 않고 하루 7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며 다녀온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물론 여행하는 내내 허리 통증을 겪은 아내, 다양한 사고들(도로 사정, 자동차 문제 등), 깨끗하지 않은 침구류, 서로 다른 생각에서 오는 충돌 등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책 안에 녹아들어 있다. 목표가 있어도 여러 문제 앞에서 여행을 포기할 수 있지만, 끝까지 완주한 이들의 여행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깊은 상식과 지식 덕분에 그 어떤 여행기 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고, 여행기 곳곳에 담겨있는 지역의 문화와 애정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역시 나이는 숫자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도전하는 사람만이 결국은 귀한 열매를 마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