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에 마음이 답답해서 집에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임의로 타고 거의 종점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 여주인공이 택시를 타고 뒷좌석에 앉아 하염없이 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차마 요금의 부담 때문에 택시는 못 타고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버스였다. 그때 탔던 버스가 160번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놀란 것이 매 정류장이 유적지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날의 일탈은 3시간여(그것도 이동시간만 2시간 반)로 끝났지만, 매주말마다 정류장 속 역사의 현장을 다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몇몇 곳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큰 아이와 둘러보기도 했고, 얼마 전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서울에 살고 있기에,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던 곳들을 어렵지 않게 다녀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자주 안 다니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천에 있지만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 버스에 앉아서 정류장의 이름을 보며 받았던 충격과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게 이름조차 생경했던 우리의 역사의 장소들로 이끄는 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곳을 더 이상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사실 장소도 장소지만, 처음 주하는 내용들도 여럿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이 새문안교회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가 정동에 고아원을 세웠는데, 그 고아원 출신 중에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선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고아원은 구세 학당(경신학교)으로 발전했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안창호 선생이 있었다.
특히 얼마 전까지 내가 근무하던 지역을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한 달만 빨리 이 책을 마주했더라도 점심 먹고 한 바퀴 돌면서 책 속에 장소를 내 발로 밟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행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명동에서 남산을 넘어 돌다가 만난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근데 그곳에서 기억의 타고 쓰인 돌을 보고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보니 그곳이 통감관저터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봤다면 이해가 되었을 텐데, 그저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아직 마음만 먹는다면 한 시간 내외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청계천을 비롯하여 한국은행 등 다양한 유적지가 모여있는 중구와 종로구는 정말 하루 종일 돌아도 될 정도로 많은 역사의 장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책을 통해 마주했던 유적을 직접 걸어본다면 좀 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고, 아이와 함께 산 교육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