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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지님의 서재

그러다 어느 날, 지겨워졌어. 집착하는 걸 그만뒀어. 아니다, 집착하지 않는 데에만 집착하게 된 거야. 계기는 벌써 잊어버렸어.
그 뒤론 말이지, 호타로,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즐거워. 오늘은 자전거, 내일은 수예. 안보에, 간이 보험에, 클래식. 집착하지 않는 정도의 집착을 양념으로 온갖 분야를 기웃거려.
그게 너였던가, 언젠가 날 형광 핑크라고 표현했던 게. 그 말이 딱 맞아."
사토시는 이제 내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사토시의시선 앞에 나는 없었다. 회고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 편한 나날에도 딱 하나 문제가 있었어.
난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면서 편한 마음을 얻었어.
에너지 절약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네게 지주가 돼 주는지 난알 방법이 없어. 그렇지만 내 집착하지 않기는 꽤 핵심적인문제거든. 만약 이게 없으면 난 또 그 한심한 집착쟁이로 돌아갈지도 몰라.
그런데 마야카가 있었어."
사토시가 주먹을 쥐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383
나 오레키 호타로는 비교적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편이라고 자부한다.
더불어 논리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논리 정연한방식으로 사고를 정리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날 가미야마 시 미즈나시 신사 경내에서. 어느봄날 오전 11시 45분 전후, 주니히토에를 입고 걷는 지탄다를 봤을 때.
내가 왜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모로 생각해 봤지만 설명은 할 수 없었다. 안 해도 되는 일은 안 한다. 해야 하는 일은 간략하게. 이런 에너지 절약주의가 치명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예감만 들고, 어째서그런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저 한결같이 실수했다. 좋지 않다. 그런 생각만 들었다.- P438
"보세요, 오레키 씨. 여기가 제 장소예요. 어떠세요, 물과 흙밖에 없죠? 사람들도 점점 나이가 들고 지쳐 가고 있어요. 산들에 질서 정연하게 나무가 서 있지만 상품 가치로 따지면 어떨까요? 전 이곳이 최고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팔을 내리고, 그 김에 눈도 내리깔고, 지탄다는 중얼거렸다.
"오레키 씨께 소개드리고 싶었어요."- P459
이때 나는 전부터 품고 있었던 의문에 관해 한 가지 답을얻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네가 포기한 경영 전략에 대한 안목 말이다만, 내가 길러 보면 어떻겠냐?’
그러나 어째선지 도무지 말할 수 있을 성싶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 하는 경험은 지금까지풀 수 없었던 의문을 풀어 주는 큰 열쇠가 된다.
나는 알았다.
후쿠베 사토시가 어째서 이바라의 초콜릿을 부수었는지.
요컨대 이런 것이었다.
지금 어둠이 밀려오는 여기 지탄다가 저택에서 내가 한 말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 다른 한마디였던 것과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무뚝뚝한 태도를 한껏 가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추워졌다."
지탄다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부드럽게 미소 짓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이젠 봄이랍니다."-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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