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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의 서재
  • [전자책] 구두
  • 계용묵
  • 5,000원 (250)
  • 2014-07-07
  • : 12
⭐ 계용묵(1904~1961)⭐
본명 하태용. 평북 선천 출생
휘문고를 거쳐 1928년 일본 토요대 동양학과에서 공부.
1927년 '조선문단'에 <최서방>이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함.
1935년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지위를 확고히 함.
1938년 '조선일보' 출판부에 근무하였으며
1943년에는 일본 천황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기도 함.
📚 대표작: <백치 아다다>, <별을 헨다>, <병풍에 그린 닭이>, <인두 지주>

■ 단상
계용묵은 술도 잘 마시지 못하고 유일한 취미는 '낚시'였다고 한다. '인생파 작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일제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의 삶을 글로 표현했다. 중학시절 <백치 아다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수필하면 묵직한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구두>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의지와는 관련없이 구두 수선공의 알뜰한 배려로 구두에 징을 박아둠으로서 사건이 시작된다. 또그닥또그닥이란 표현도 재미있다. 이름모를 여자가 순수 자기 상상력으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진실규명에 나는 좀 더 걸음 속도를 낸다. 이에 여자는 숨가쁘게 달리더니 옆 골목으로 사라진다. 불량배로 오해받은 나는 즉시 징을 뽑아버린다.

살다보면 오해로 인해 생긴 일들도 많을 것이다. 본의와 다르게 왜곡되어 인간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단절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런 인간 관계에서의 왜곡과 세세한것 까지 신경쓰며 살아야 하는 당시 시대상을 꼬집는다. "참외 밭두렁에서 신 끈을 고쳐매거나 배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 괜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자"라는 말을 코믹하게 글로 표현한 재치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 본문 🌷
구두 수선(修繕)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구, 무엇이 어쩌구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귀맛에 역(逆)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音響)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은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으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 창경원(昌慶苑) 곁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노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이십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 소리의 주인공을 물색하고 나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는 걸 나는 그저 그러는가 보다 하고, 내가 걸어야 할 길만 그대로 걷고 있었더니, 얼마큼 가다가 이 여자는 또 뒤를 한번 힐끗 돌아다 본다. 그리고 자기와 나와의 거리가 불과 지척(咫尺) 사이임을 알고는 빨라지는 걸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뛰다 싶은 걸음으로 치맛귀가 옹이하게 내닫는다. 나의 그 또그락거리는 구두 소리는 분명 자기를 위협하느라고 일부러 그렇게 따악딱 땅바닥을 박아 내며 걷는 줄로만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여자더러, 내 구두 소리는 그건 자연(自然)이요, 인위(人爲)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일러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어서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나는 그 순간 좀더 걸음을 빨리하여 이 여자를 뒤로 떨어뜨림으로 공포(恐怖)에의 안심을 주려고 한층 더 걸음에 박차를 가했더니, 그럴 게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어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 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한참 석양 놀이 내려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鋪道) 위에서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 3보(步)만 더 내어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 그 2, 3보라는 것도 그리 용이히 따라지지 않았다. 한참 내 발부리에도 풍진(風塵)이 일었는데, 거기서 이 여자는 뚫어진 옆 골목으로 살짝 빠져 들어선다. 다행한 일이었다. 한숨이 나간다. 이 여자도 한숨이 나갔을 것이다. 기웃해 보니, 기다랗게 내뚫린 골목으로 이 여자는 휑하니 내닫는다.

이 골목 안이 저의 집인지, 혹은 나를 피하느라고 빠져 들어갔는지, 그것은 알 바 없으나, 나로서 이 여자가 나를 불량배로 영원히 알고 있을 것임이 서글픈 일이다.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異性)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다음으로 그 구두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別)한 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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