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는 어렵다. 읽기 전부터 마음에 부담이 생기는 까닭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기에 고전이 되었고, 오래도록 읽혀지는 작품이다. 필연적으로 나도 끝까지 읽어내고 깊은 감명을 받아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그래서 함부로 고전의 첫 장을 열지 못하게 된다.
한가했던 어느날 그 유명한 도스도에프스키의 죄와벌을 꺼내들고 말았다.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총 900페이지에 달하는 죄와 벌을 읽으며 한동안 이 책에 메여야만 했다. 신나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지만 읽기를 멈출 수도 없었다. 죄와 벌에는 그런 질퍽하고 묵직한 끌림이 있었다.
죄와 벌은 러시아 빼째르부르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표를 운영하는 늙은 노파와 그의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한다. 그리고 전당포에서 가지고 나온 돈과 귀중품은 확인도 하지 않고 뒷 골목에 묻어버린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 사건 이후 알 수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곤란에 처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고, 가난한 가장과 그 부인의 비참한 죽음에 함께한다. 라스꼬리니꼬프는 끊임없이 부조리와 가난과 비루함을 마주한다. 때론 치밀함으로 수사망을 피하기도 하지만 결국 소냐의 도움으로 살인자임을 고백하고 만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운명의 여인 쏘냐와 함께 일상을 보내며 다시 희망을 찾게 된다.
죄와 벌의 무대는 재정 러시아의 도시 빼쩨르부르그이다. 시종일관 빼쩨르부르그는 어둡고, 춥다. 등장인물들의 집이나 방에 대한 묘사도 음침하고 무겁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은 어두웠다.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전당포의 늙은 노파를 죽임으로 정의의 응징을 가하려 했던 라스꼴리니꼬프는 뜻하지 않게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따까지 죽임으로 더욱 심한 죄책감과 고뇌에 빠진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살인과정에서 치밀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보게 된다. 살인의 도구인 도끼를 몸에 숨기고, 노파를 단번에 도끼로 내려쳐서 죽이고, 노파의 여동생까지 도끼로 죽인 후에 정신이 없는 중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살인 현장을 빠져 나오는 주인공의 행동은 많은 의문점을 불러 일으킨다.
왜 라스꼴리니꼬프는 노파와 여동생을 죽였는가? 죄와 벌을 읽으며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질문이었다. 왜 ? , 이럴거면 도대체 왜 죽였단 말인가. 노파의 재산을 취해서 가난을 해결하든지, 주변 사람들을 도왔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라스꼴리니꼬프는 단 한푼도 죽은 노파의 돈을 갖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정당하게 주어진 소중한 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써버린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돈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는 대리자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라스꼴리니꼬프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책을 읽는 내내 한번도 라스꼴리니꼬프의 밝은 표정을 찾을 수 없다. 늘 아프고, 침울했고,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는 쏘냐의 도움으로 범죄를 자백한다. 그리고 비로소 수용소에서 처음로 편안한 마음의 라스꼴리니꼬프를 발견한다.
대의가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 도스도예프스키는 "죄와 벌"을 통해 대의를 내세운 부당한 행위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진정한 "벌"은 스스로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고통임을 깨달았다. 물론 점점 마음이 무뎌져가는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