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모두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시대가 왔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과, 시장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공존하는 시대이다.
민주주의를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는 힘들어도, 작금의 시대에서 민주주의는 ‘도덕적 이상향’을 넘어서 ‘도덕적 완성’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위에 어떤 대척점을 두고 사는 남한 사람들이라 그런 것인지, 우리는 민주주의가 옳은 것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의구심을 품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일단 분명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부터 ‘도덕적 이상향’이 되었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서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꽃 피웠을까?
민주주의는 정말 등장했을 때부터 하나의 교리처럼 무조건적인 사랑받아왔을까?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성사학자인 저자는 “투표, 입헌주의, 법치를 민주주의의 본질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은 시대 불변의 관념이 아니”라, “기껏해야 200년 전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현실적인 고려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 이후에도 민주정은 이야기 꺼내기엔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수백년 동안 거의 모든 사상가들은 인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불안을 공유했고, 이는 사실 혁명으로 부침대 뒤집듯 바뀌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첫 3년간 국회의원을 거친 2,000명 중 민주주의를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좋은 예이다.
모두에게 미움받았던 민주주의,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교과서가 될 수 있을까?
저자가 도입부에서 서술하는 이야기들은 다음의 결론은 내린다.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미움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마주하고 혼란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학술적 도파민을 가득 자극한다. 루소를 대표적인 민주주의 이론가라고 배워온 우리는 1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머리를 꽝 맞는 충격을 맞이할 것이다.
루소, 아무리 사회와 역사 과목이 싫었던 이들이라도 <사회계약론>이 민주주의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을까?
그런데 저자는 1부가 끝나기도 전에 루소가 "민주정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을 논증하고자 저자는 아주 철저히 지성사의 입장에서 사료와 당대의 분위기를 읽어낸다. 그러니 우리는 장이 끝날 때쯤이면 루소와 사회계약론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지성사가인 저자는 아주 성실하게, 우리의 오해를 풀어내며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 지식과 현재의 지식을 끊임없이 충돌시키거나 결탁시키는 혼돈을 만든다. 이 책을 읽는다면 동의할 것인데, 혼돈은 결국 흥미를 만든다.
저자는 혼돈과 흥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독자를 차근차근 어르고 달래며, 왜 수천 년 동안 민주주의가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는지, 그러한 상황이 18세기 말 유럽에서 어떤 계기를 통해 바뀌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민주주의의 최종적이고 위대한 승리를 찬양하려는 목적으로 저술된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성사가인 저자답게 이 책은 과거를 과대하게 해석하거나 당대인들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단죄하거나 찬미하지 않고, 당대의 사회적 맥락에 맞춰 당대인의 시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오늘날 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에 맞춰 과거의 민주주의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아주 성실하게 각 시대별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준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고대 그리스, 18세기 말 유럽과 프랑스혁명...... 듣기만 해도 막막한 애들 속에서 당대의 민주주의를 추출한다는 것이 벌써 두렵고, 그러나 한편으로 흥미롭게 느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저자는 독자를 차근차근 달래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즉 이야기의 강약조절을 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역사학자다. 그러한 친절과 능력의 증거가 바로 '개념잡기' 파트이다. 저자는 무작정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저자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인 개념을 잡아주며 글을 연다.
이것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① 국민은 국가의 존재를 전제한 뒤에 사용할 수 있기에 주권을 이야기할 때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민이 더 정확하다는 것
② 민주정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미이며, 민치정은 인민이 통치함을 뜻한다는 것이다.(다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글에서는 민주정으로 대체되어 서술된다)
우리는 이 두 개념을 충분히 인지하면 친절하게 각 장을 나눈 저자에 따라 한 챕터씩 이야기를 전진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인간사의 정답은 무엇인데요?
민주주의가 어째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고, 어떤 계기로 인정받기 시작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책을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사의 정답에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과도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다. 혼돈과 흥미의 늪은 스스로 빠져봐야 진정한 도파민의 폭발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인간사의 정답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노라 하는 역사학자들조차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검증하는 것을 실패했다.
과거 엘리트들은 인민의 통치를 끊임없이 우려했고, 엘리트의 통치도 인류사를 무수한 학살과 전쟁으로 빠트린,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 인간사의 결론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불완전의 끝에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하나의 온전함을 느낀다. "인류의 과거사는 우리에게 엘리트의 통치도 인민의 통치만큼이나 불완전했으며 어떤 지식도 영원불멸의 진리로 입증된 적이 없다"는 점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해도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