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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은님의 서재
  • 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 한강
  • 12,600원 (10%700)
  • 2021-09-09
  • : 640,70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에 새겨진 눈송이를 눈을 감고 어루만진다. 제목을 곱씹어본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 대충 그것의 한자를 추측해본다. 지을 작, 나눌 별. 감았던 눈을 뜨고 핸드폰을 찾아 작별을 검색해본다. 지을 작, 나눌 별. 추측한 것이 맞았음에도 석연치 않았다. 조금 더 문학적으로 그 뜻을 생각해본다. 이별을 만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별은 이별보다 더 깊은 의미라고 느껴진다. 조금 더 먼, 영영 만날 수 없는, 그런 사이에나 붙일 수 있는 말 같다고 느껴진다. 그러다가 다시 눈썹을 찡그린다. 그런데 이별을, 만들 수 있나? 그렇다면 이별을 ‘당하는’ 사람은 영영 작별을, 그러니까 이별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다시 고민한다.

내가 인지하는 가장 최초의 작별은 외할아버지의 관한 것이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몇 없다. 그런데 그중 가장 생생한 것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엄마와 나눈 대화라는 게 아이러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다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외할아버지는 어디 가신거야? 엄마는 대답했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멀리 여행을 가셨어. 엄마는 내 신발끈을 고쳐 묶어주셨다. 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 그럼 할아버지한테 올 때 선물을 사달라고 하면 안 돼? 그 뒤로 엄마가 대답을 했는지, 대답을 안 했는지, 혹은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초의 작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할아버지의 마지막이나 장례식장 모습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이리도 덤덤한 것에 비해, 나는 군인들이 사람들을 세워놓고 죽였다는, 그들을 그렇게 ‘절멸’시켰다는 페이지를 쉬이 넘기지 못했다. 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랫동안 그 페이지를 펼쳐 쥐었다. 마침내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 할 때 종이의 가장자리에 남은 엄지손가락 자국을 또 몇 분 멍하니 보았다. 나는 이런 경험을 이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일본이 간도의 한인마을을 절멸시킨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제암리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상세히 기술된 기록을 읽었을 때 그때도 그저 가만히 손을 떼지도 못한 채 계속 그 페이지를 읽었었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며 나는 책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표지의 눈송이를 다시 만졌다. 총소리가 들려서 총알이 들어올까 이불을 뒤집어썼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친할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의 친할머니는 어렸을 적 내가 잠을 자지 않으면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때론 일본놈들은 아주 나쁘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때론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과 그 소리에 아주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 쓰셨다고 하셨다. 솜이불을 쓰셨던 때가 일제강점기일지, 6·25일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할머니는 제주도에 사신 적이 없으니 그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불을 쓴 누군가에게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둥글게 몸을 만 어린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러자 손끝과 발끝이 조금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불을 쓴 그와 솜이불 아래에서 웅크려 있던 할머니는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앞장에 있던,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에도 뒤를 돌아보아서 돌이 되었다는 여인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그가 한 걸인이 한 이야기를 유심히 듣지 않았다면 산으로 뛰어 갔을 리도 없으니, 그 여인이 뒤돌아본 이유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남겨둔 사랑이 있어서 귀 뒤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불을 쓴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를 계속해서 생각한 것처럼.

그러니 정심이 계속해서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남겨둔 ‘사랑’이 있었다. 정심이 계속해서 뒤돌아 교도소에 항의하고, 기사를 스크랩하고, 동굴의 진흙을 밟은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스크랩을 그만 둔 뒤로도 여전히 꿈속에서 모든 순간들을 뒤돌아본 것도, 그래서 마침내 오랜 시간 잠드는 돌이 되어버린 것도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심에게 꾹꾹 눌러쓴, 뒤돌아 볼 수밖에 없는 ‘사랑’이 있었으니까. 정심이 꾹꾹 눌러 글자를 썼을 때, 그는 글 쓰는 것이 어색해서 힘을 주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따금 글 쓰는 것이 낯선 이들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쳤다. 그는 지극한 사랑을 눌러썼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게 그녀가 돌이 되기 전 버텨낸 기록일 것이다.

툭 튀어나온 표지의 눈송이와 꾹 들어가 있을 정심의 글자. 그 대비 속에서 결국 눈이 쌓여 부러진 나무의 모습이 떠오른다. 솜 같던 눈이 쌓여 가지를 부러뜨렸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눈에게도 무게가 있다는 말이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린 눈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영영 그것을 가늠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이야기와 작별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영영 보내어 역사책 귀퉁이에 실은 채 적당히 넘길 수 있을까? 작별하지 않는다는 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겠다는 거다. 작별 ‘당한’ 이들이 할 수 있는 표현이자 여전히 이별을 만들 생각이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야기를 끝낼 수 없으니까 작별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학교 3학년 <사학개론>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은 한 논문을 인용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한 사건을 제대로 논할 수 있을 때는 당사자 세대에서 3세대가 되는 시점, 그러니까, 한 아이의 자식의 자식이 되었을 때라고 하셨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당사자보다 더 맑은 눈으로 사건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언제 제대로 이야기 될 수 있을까? 집 마당 한 가운데에 묻힌 할아버지로부터일까, 외삼촌으로부터일까, 정심으로부터일까, 강보에 싸여 던져진 아기로부터일까.

어쩌면 벌써 그 시기가 왔을지도 모른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박물관이나 여러 논문이 나오고, 마침내 이 책이 나왔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와 감히 작별할 수 있을까? 내가 여전히 군인들이 대살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일본군이 무참히 학살한 간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제암리 교회에서 불탄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넘기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아마 이 사건과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구해줍서’라고 말하는 정심을 영영 구해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그의 손을 붙잡아주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정심을, 그 상처받은 이들을, 아직도 꺼내지지 못한 그들을, 지극히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뒤를 절대 돌아보지 말라는 말에도 뒤를 돌아보아 돌이 되었다는 한 여인처럼, 계속 뒤를 돌아볼만한 ‘사랑’ 생겨버린 것이다. 비록 작별 당했지만 이별을 만들 생각이 없는, 지극한 사랑을 가진 ‘우리’가 생겼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도 꾸준히 이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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