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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위원 이전에 소위 '지식 소매상'으로 불리며 글쟁이로 살았던 유시민이 오랜만에 책을 출간했다.

<대한민국 개조론-돌베개>. 제목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이 책은 저자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글 꽤나 쓴다는 저자여서 그런지 책은 단숨에 읽힌다.(저자도 이 책 쓰는데 단 25일만에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내용이다.추상적인 이 말은 책을 읽다보면 꽤 매력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저자의 얘기는 이렇다.

 "이미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으로 개방화로 가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좋든 싫든 차라리 긍정적인 태도로 그것을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대한민국을 크게 나쁘지 않은 통상국가에서 크게 성공한 통상국가로 밀어올리자는 것입니다. FTA는 그 연장선상에서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 FTA가 성공을 보장하는것은 아닙니다. 선진통상국가로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경쟁력 있는 국민을 제대로 길러내는 사회투자국가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양자택일의 해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둘 다를 해야합니다. 성장주의도 평등주의도 혼자서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여기서 통상국가하면 대개 수출, 무역, 세계화, 경쟁등의 단어가 떠오르면서 어느정도 대충 알겠는데 사회투자국가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저자를 더 따라가보자. 이 책의 핵심주장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투자정책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4조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시혜적 복지정책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인지적,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이 더 커지고, 국민들이 서로 믿고 협력하면서 살아갈수록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은 그만큼 더 높아집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키우고 경제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때, 한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느낄 때, 사람도 발전하고 국가도 발전합니다. 이런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국가가, 제가 말하는 사회투자국가입니다." 여전히 모호한 이 말을 저자는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비전 2030>이 제시한 국가발전전략으로는 첫째, 선도적 세계화 둘째, 인적자원개발 셋째, 사회적 자본 확충입니다.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일하는 사람이 줄고 노인은 늘어나게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계속 잘 살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해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인구 5,000만 명도 안 되는 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앞장서서 세계무대로 나가 경쟁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성공을 거두려면 국민 개개인이 유능해야겠지요. 국민 개개인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인적자원개발 투자이고, 이러한 국민 개개인의 능력이 최대한의 경제적 성과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투자입니다. 사회투자국가란 인적자원개발과 사회적 자본 확충에 전력을 다하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장기 국가재정계획을 혁신하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경제지출 비중을 10%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복지지출 비중을 40% 수준으로 높이자는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아동발달지원계좌, 해외입양인 네트워크, 사회서비스시장 일자리 창출, 의료급여제도혁신, 국민연금개혁, 건강투자정책, 파랑새플랜, 공적개발원조 등 주로 보건, 복지분야에서의 그동안의 성과 및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모두에게 이익이 가는 합리적인 전략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보수파는 선진통상국가를 좋아하고 진보파는 사회투자국가를 좋아하니, 각자 좋은 것 하나씩 가지면서 소통하고 대화해서 합리적인 정책과 대안을 만들자고 말한다. 모든것 다 가지려 하지말고 하나씩 양보하고 불만이 있으면 토론하자고 한다. 이건 왕인 국민에게도 요구하는 것이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에 대한 어이없음, 진보정당에 대한 책임성 요구, 민주적 리더십,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선거제도 변경 등은 보너스다.

 정치인이  쓴 책들이 대부분 자화자찬하는 자서전류가 많은데 이 책은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몇몇 대목은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우리 국민은 이미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자주 병원에 다니는 국민입니다. 더 자주 병원에 가서 좋을 게 없습니다. 국가의 보건정책이 지향하는 목표는 국민이 자주 병원에 가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건강해서 병원에 자주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착각합니다."

 "건강이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의료접근성보다는 생활행태와 환경개선이 중요한 사업임을 강조해왔습니다."

 "정말 국민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왕(국민)이 왕 노릇을 못하고 누군가의 수렴청정을 받게 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씀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처럼, 저도 정치적 사망을 각오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는 정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보다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로 믿지도 않는 언론이 누군가를 욕하면 그건 또 잘 믿습니다."

 저자도 밝혔듯이 보건과 복지를 제외한 다른 분야는 총론 수준에서만 다루어진 점은 아쉽지만 기대를 품게한다. 

 문제는 이 책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국가발전전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이 책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거 아닌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도 있으니, 무언가 통할 방법을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려 200여 개 시민단체로부터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목당했던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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