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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님의 서재
  • 공부의 위로
  • 곽아람
  • 14,400원 (10%800)
  • 2022-03-20
  • : 2,156

살다보면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되는 일들이 있다. 독서와 인문학의 힘도 내게는 그런 류의 일 중 하나다. 민음사의 민음북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의 책 소개가 딱 내 이런 생각과 동일해보여서 선택했고, 운좋게 당첨도 됐다. 


책은 어릴때부터 좋아했다. 유치원 무렵의 디즈니 그림동화전집을 시작으로, 학창시절 내내 책은 내게 취미가 아니라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지금부터 독서를 한다, 가 아니라 숙제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오늘 읽을 책을 골랐다. 입시에 치여 살았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종종 문제집 아래에 소설책이나 세계사책 등을 깔아놓고 몰래몰래 읽곤 했다 (나는 야자 시간에조차 공부 외의 다른 짓을 하다 걸리면 큰일나던 세대) 대학생이 되고나서 책을 많이 읽을수 있는 강의를 택하면 일석이조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문학 강의들을 택했다. 물론 교양필수에 인문학 강의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지만. 여하간 책도 읽고 공부도 하니 이 아니 좋을쏘냐. 그리고 이는 아주 나이브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모교는 전공 상관없이 무조건 3가지 강의를 이수해야 했다. 인문학에서 1개, 사회과학에서 1개, 순수과학에서 1개. 나는 다른 교필들은 1개씩만 수강했지만, 인문학에서는 예외로 2개를 택했다. 첫번째 강의는 교양필수니까 일단 인문학 중 하나는 들어야해서, 두번째 강의는 첫번째 강의가 쉽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재미는 있었고, 그래서 관련된 내용으로 더 듣고 싶어서. 졸업한지 오래되었으므로 정확한 강의명같은건 기억나지 않는데, 하나에서는 서양 문화와 역사의 기원을 다룬 강의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 그리스 희곡들을 배웠고, 다른 비슷한 내용의 강의에서는 성경, 길가메시 서사시, 버질, 호메로스 등을 배웠다. 사실 너무 오래전이라 명확하지는 않다. 명확한건 이 두 강의에서 여하간 이런 것들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 강의들을 수강하면서 한 강의당 열권도 넘는 책을 읽고 레포트 쓰고 시험보는건 쉽지않은 일이었다. 전공보다 시간을 더 들여야 했으니... 밤늦게까지 레포르를 쓰면서 생각했다.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교양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듣고있나, 내 인생에 과연 이 강의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후 취직도 전공으로 했으니 무의식중에도 그 교양강의들이 다 무슨 의미였지, 라는 생각을 꽤 오랜기간 했다. 

 

그리고 삶이라는건, 전혀 생각지 않은 순간에, 갑자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인생이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의미를 가진다, 라고 아르메니안의 네 딸들에서 누가 이렇게 생각했더라? 여하간 성인이 된지도, 사회생활을 시작한지도 꽤 오래된 최근에서야, 불현듯 깨달았다.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쭉 해오던 독서와 대학시절의 그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냥 내 취향이라 해보는거지' 의 교양강의들이 사실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나를 지켜주고 지탱해왔음을.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수없이 많은 간접경험들을 했고 그 강의들을 들으며 각 캐릭터들을 각자의 시각에서 다각도로 바라보는 훈련을 받으면서 그때까지 단순히 재미로 읽었던 책들과 이 훈련이 만나 세계가 더 풍부해지고 시각의 다각화가 이루졌음을. 쉽게 누군가에게 선동당하지도, 쉽게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과 상황들을 즉각적으로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거나 찬양하지 않게, 내가 선택한 삶을 큰 흔들림없이 즐기고 나아갈수 있는 힘을 그렇게 얻었음을.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이런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없는 이 시대에, 그저 휩쓸리고 부러워하고 절망하기에 너무도 쉬운 이 시대에, 그러지않고 자신만의 기준과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을수 있다는것은 굉장한 힘이다. 바로 윗 문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내 삶 자체에 대해서는 독서와 대학의 인문학 강의에서 얻은 바가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인문학 강의가 필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무엇보다도 인문학 강의를 교양필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건 솔직히 저자의 기억력이다. 어떻게 그 옛날의 강의명이나 과제들을 그렇게 명확하게 기억하고있을수가 있지...? 난 이제 전공강의가 몇개였는지, 내가 몇과목을 들었었는지조차 가물거리는데. 그리고 좀 재미있었던건 책 전반에 깔려있는 아닌척 하지만 사실은 자기자랑인 특유의 우월감. 그러나 그 우월감이 인생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되어 그만큼 더 힘을 낼수 있고 그만큼 더 바르게 살아가도록 가이딩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 무엇이 문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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