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를 읽을 때,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첫부분을 의외로 소크라테스나 소피스트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철학은 자아와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니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고대인들이 상상한 신화로부터 철학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신화를 다룬 원시종합예술에서 시와 소설이 파생되어나왔으니 문학과 철학은 배다른 형제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신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시간에 단군신화의 의미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천손사상과 농업을 중요시하고 동물을 신으로 삼는 애니미즘과 무당의 샤머니즘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신화는 우리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주위환경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또한 신화를 보면 그 집단의 무의식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농경사회의 신화와 수렵사회의 신화를 비교한 것처럼 말이다. 신화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닌,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인 것이다.
또한 각 지역의 신화를 비교함으로써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 중국의 고대설화는 반고라는 거인이 하늘을 떠받들다 죽어 세상으로 바뀐다. 반면 성경의 창세기는 신이 자신과 독립적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신적 존재와 세상이 독립적인가 연관되어있는가는 결국 그 사회에서 개인이 존재하는가와도 관련이 있다. 서양의 연애소설이 동양에 전파되었을 때 동양인들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는 일화가 있다.이처럼 신화는 그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무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대인들은 결국 우리들의 조상이니까말이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신화가 가지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황금가지같은 다른 신화학 저서들도 읽어보고싶어졌다. 신화란 참으로 흥미롭고 근원적인 매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