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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
  • 윌리엄 T. 테일러
  • 21,600원 (10%1,200)
  • 2025-10-13
  • : 2,011

 인간은 신석기 시대 자신들의 모습을 영구히 바꿀 몇 가지 시도를 한다. 농경과 가축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때 길들인 가축들 중 일부는 식량자원으로 지금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 닭, 돼지, 양, 염소 등이 그러하다. 반면 말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승마나 경마, 일부 목장주들에게만 말은 의미가 있다. 반면, 일반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말을 거의 보지 못하고, 영향력도 전혀 느끼질 못한다. 하지만 과거 말은 식량, 운송, 전쟁, 정치, 지정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는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룬다.


1.말의 진화

 공룡의 대멸종 이후, 포유류의 세상이 시작되며 최초의 새벽말이 등장한다. 이것의 크기는 키 30cm 정도로 매우 작았다. 당시 이 새벽말은 발가락이 뒷 다리 3개, 앞다리 4개였다. 하지만 지금 현대말은 발가락이 1개, 코뿔소는 3개, 맥은 뒷다리 발가락 3개, 앞다리 발가락 4개다. 

 대멸종 이후 풀은 광범위하게 번성한다. 풀은 건조하고 배수가 잘 안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며. 실리카 함량이 높고 억새서, 동물 입장에서는 나뭇잎에 비해 씹거나 소화가 어려웠다. 풀은 원래 열대식물이었으나 대멸종으로 발생한 생태적 공백을 차지해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초식동물은 당연히 풀을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풀로 충분한 열량을 얻으려면 소화가 잘 안되기에 매우 방대한 양을 섭취해야 했고, 소화에도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었다. 특히, 풀은 거칠어 그 자체가 동물의 치아를 마모시켰고, 땅에 붙어 있어 먹는 과정에서 흙과 모래도 다량 먹게 되어 이에 대한 처리도 필요했다. 그리고 풀이 자라는 초원은 나무로 둘러싸인 곳과는 전혀 다르게 초식동물 자체가 완전히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풀의 등장은 원시말의 진화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말은 우선 치아를 강화한다. 핀서처럼 생긴 앞니가 풀을 줄기에서 잘라내고 어금니와 앞어금니 6개가 한 줄로 늘어선 뺨이 발달해 여기서 식물이 갈리고 으깨지며 보호막이 부서져 흡수된다. 원시말 집단인 말아과에서 힙소돈트가 발생했는데 이들은 치관이 긴 치아형태가 발달했다. 힙소돈트는 이솜선 위 아래에 숨겨진 이빨의 추가 부분이 있어 치아가 마모되어도 이를 나중에 쓸수 있다. 

 그리고 말은 위가 1개다. 반추동물은 억센 풀을 소화하기 위해 위가 4개다. 여기서 풀을 소화, 발효하고 다시 씹어 소화시킨다. 말은 1개의 위지만 맹장에서 미생물군 유전체가 풀을 소화한다. 다만 위가 4개나 되는 반추동물보다는 소화효율이 떨어지기에 말은 풀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무려 하루에 체중의 2.5%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말은 하루 종을 풀과 수원을 찾기 위한 지구력이 필요했다. 동시에 개활지 초원에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속력도 필요했다. 말의 길고 강한 다리, 탁월한 근육, 독특한 인대구조는 모두 이를 위해 진화한다. 그리고 빠른 출발과 속력 유지를 위해 발가락 3-4개가 하나인 발굽으로 변형한다.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려면 빠른 속력도 필수이나 수적 우위도 중요하다. 그래서 말속에 속하는 동물은 집단 사회구조를 갖는다. 말은 암컷과 그 새끼 무리, 또는 수컷과 그를 따르는 다수의 암컷으로 집단을 이룬다. 말은 안정적, 장기적,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로 인해 높은 지능과 독특한 의사소통능력을 갖고 있다. 말은 다른 말 집단의 의사소통을 엿듣는 것도 가능하고, 복잡한 학습과 암기, 개념 형성 능력이 있다. 


2. 말의 확산과 가축화

 현존하는 말은 400만년 전 북미에서 갈라져 나왔다. 유럽인들이 미대륙에 도착했을 때 말이 없었던 상태였기에 말의 원산지가 북미라는 점은 의외의 면이다. 말의 한 갈래는 카발라인 말로 현대의 길들인 말과 유사계통이며, 다른 하나는 얼룩말과 야생당나귀와 당나귀의 계통이다. 플라이스토세의 첫 빙기에 양 집단이 베링육교를 거쳐 아시아로 들어온다. 20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로도 진출했다. 당시는 춥고 건조하여 다른 동식물에겐 불리한 환경이었으나 말은 이 기후가 초원확산에 적합하여 전성시대를 맞는다. 그래서 플라이스토세 후기가 되면 말은 호주와 남극에 제외한 세계 전역으로 확산한다. 

 초기 얼룩말은 사바나에 잘 적응했고, 야생당나귀는 아프라키와 유라시아의 중간 위도에, 말은 아시아와 유럽 고위도 초원과 삼림에 잘 적응했다. 초기 인류에게 말은 식량자원이었다. 말의 척추와 뇌, 혀, 골수까지 섭취했다. 그리고 말의 골반뼈와 다른 뼈는 무른 망치 제작에 사용되었다. 무른 망치는 무뎌진 돌칼을 날카롭게 만드는 도구였다. 그리고 말의 가죽은 옷이나 물건, 의류에 소재였다. 초기 인류는 말의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물가의 골짜기, 계단지형, 얕은 물길로 몰아서 사냥했다.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어 퇴로를 막고 집단학살하는게 방법이었다. 

 주요 식량이었기에 구석기인들은 뼈, 돌, 상아 등 거의 모든 도구에 말을 그리고, 새기고, 조각했다. 그림속의 말은 짝짓기, 배변, 달리고, 사냥당하는 등 다양한 모습이다. 그림에는 회갈색과 흰색이 섞인 패턴의 말이 가장 많았는데 이들은 프로제발스키말이다. 말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해서 유럽 구석기 예술 4700점 중 말이 전체 이미지의 1/3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데 2만년전부터 기온이 상승한다. 고대 말의 개체 수를 감당한 광대한 초원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따뜻한 기후와 생태계 변화로 매머드, 낙타, 등소, 말등의 대형 초식동물이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이들에 의존하던 검치호랑이와 다아어울프등도 타격을 입는다. 결국 이들은 홀로세 초기 수백년간 멸종한다. 북미의 야생 말들은 먹이와 서식지의 감소로 인해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유라시아에서도 말의 개체수가 급감한다. 그래서 인간의 식단과 고고학 유적에서도 말의 등장 빈도는 크게 줄어든다. 개가 이 시기에 길들여지는데 아마도 늑대 역시 대형초식동물의 급갑으로 먹이가 줄자 인간의 서식지 인근의 먹이 찌꺼기를 찾다 접촉 빈도가 올라가서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개는 1만 6천년 정도에 길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인간은 정착하며 양, 소, 염소 등 대형초식동물을 잡아서 길들인다. 

 암나야 문화는 카스피해 북졲과 동유럽 서아시아에 걸친 넓은 초원지대에 분포했다. 기원전 4천년 암나야 문화에서 해체된 바퀴달린 수레와 길들인 동물의 흔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 문화에서도 말을 길들인 증거나 나오지 않는다. 

 기원전 4천년기 말엽 유라시아 서부에서 고대 농민들은 생활과 농업 노동에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적 혁신을 이룬다. 바로 동물이 끄는 수레다. 처음에는 수레를 끈 동물은 소였다. 수레는 이후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수레는 무거운 사람, 상품의 장거리 운송에 효율적이었다. 초기 수레는 통짜바퀴 4개의 무거운 것이었다. 풀은 넉넉하지만 경작지가 부족해 늘 이동이 중요했던 스텝 유목민에게 수레는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도구였다. 이들은 수레를 이용해서 수백년간 4000km를 넘게 이동하여 내륙 아시아 몽골까지 이동한다. 하지만 우차는 느리고 짧은 시간 이동거리에 제약이 컸다. 그래서 초기 스텝 유목민들은 더 습한 북쪽 지역과 풀이 넉넉한 산림초원 변두리에서 어지간하면 이탈할 수 없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당나귀를 운송수단으로 길들인다. 당나귀는 동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으로 확산한다. 당나귀는 소보다는 힘이 약하지만 여러마리를 사용하면 소보다 빨랐다. 그리고 당나귀는 사막에 강했다. 소보다 물을 적게 소비하고, 고온에서도 잘 견딘다. 

 고대 근동에서는 말이 아니라 당나귀와 오나거를 운송용으로 사용한다. 당나귀와 오나거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탈 것이 이들에게 맞게 변화한다. 소에게 씌우는 멍에는 멍에 안장으로 네바퀴는 두 바퀴로 핸들과 탑승자 1인이 않을 수 있는 일종의 자전거 안장이 추가된다. 굴레나 재갈의 발명 이전이라 소처럼 코와 입에 고리를 걸어 제어했다. 

 잘 길들여진 최초의 말은 흑해와 그 인근 동유럽, 아나톨리아 지역의 야생 카발라인 분류군이다. 시기는 기원전 2900-2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당나귀와 오나거는 유용했지만 따뜻한 사막 지역에 살아서 추운 지역에 부적합했다. 그래서 이들이 끄는 수레는 흑해 북쪽으로는 확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말의 길들임은 쉽지 않았다. 지난 50만년간 말에게 인간은 주요 포식자로 제1의 경계대상이라 인간이 조금만 접근해도 투쟁 도피 반응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래서 말에 직접 타는 것을 말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유발해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다만 수레를 끄는 경우는 사람이 뒤쪽에 멀리 떨어져있기에 말에게 공포감을 덜 유발했다. 그리고 말은 무리 짓는 동물이기에 같이 있으면 안정되는 효과도 있었다.  

 말이 이 지역에서 수레를 끌기 시작하자 수레는 다시 변화한다. 신타시타 문화에서는 입술-고리를 대체하는 굴레와 재갈을 발명했다. 제어의 정밀도가 크게 올라갔다 .또한 바퀴살이 개발되었는데 이로 인해 수레의 고속안정성도 개선된다. 말수레의 이동성 개선으로 스텝 유목민은 이동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말은 이동수단이자 식량, 마유를 제공했다. 그리고 발굽으로 주변 얼음을 깨서 유목민이 끌고 다니는 가축들이 겨울에도 풀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유목민은 이런 말 수레로 인해 시베리아, 카자흐,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3. 전차와 말타기의 등장

 기원전 제2천넌기에 스텝 지역에서 전차가 탄생한다. 전투용은 아니었고 가볍고 빠른 실용적 탈 것으로 수레를 경량화한 것에 가깝다. 전차는 기원전 2000년부터 고작 2-3백년 만에 유라시아로 확산한다. 

 말과 전차 기술은 군사력에 이점을 제공했다. 기원전 17세기 히타이트는 근동에서 최초로 전차를 사용한다. 전차로 적의 도시를 포위하여 고립하고 빠르게 이동하며 투사체를 발사했으며 부대를 빠르게 운송할 수도 있었다. 힉소스인은 기원전 18-17세기 북쪽에서 내려와 이집트를 침략한다. 이들은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길들여진 말과 전차를 도입했다. 

 말은 스텝에서는 대량 사육이 가능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니었다. 이런 말의 생태학적 지위가 기후에 따른 지역의 지정학적 차이를 낳게 된다. 말은 대부분의 농경 및 정착 지역에서 기후상 사육이 어려워 희소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부와 사회적 위신, 군사력의 표상이 된다. 

 한편 전차는 높은 속력을 내기 위해 후방 차축으로 변경된다. 말에 대한 신뢰가 커지면서 오나거와 당나귀의 이용은 감소한다. 근동에서는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가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근동은 말을 키우기 어려운 자연환경이지만 말의 중요성이 워낙 대단하여 대규모로 사육하고 관리하는 것에 무척 힘을 쓰기 시작한다. 

 말과 전차는 몽골고원으로도 전파된다. 카라수크 문화는 길들인 말을 운송에 사용했다. 몽골 최초의 말 문화인 사슴돌-헤렉수스 지구가 등장한다. 이 문화는 사람을 닮은 형태로 조각한 신돌이나 돌기둥인 사슴돌을 젲가했다. 이 사슴돌에는 하늘을 나는 사슴 이미지가 장식되었다. 이 지역의 말은 DOM2 계통의 초기 분파다. 신타시타의 길들인 말과 관련한다. 사슴돌-헤렉수스 말들의 두개골의 코 부분은 운송으로 인한 변형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들은 처음엔 말을 운송에 쓰나 곧 말타기를 시작한다. 

 말타기는 장거리 이동을 수월히 하고, 변두리 쪽의 환경을 활용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말의 사육과 마유의 이용을 늘리고, 부를 축적 가능하게 하여 부의 불평등도 촉진했다. 말타기는 중국의 상왕조로도 전파된다. 상에 들어온 말과 전차는 큰 인기를 끌었다. 상의 전차는 바퀴살을 비롯하여 한개읜 견인 막대와 중심 차축이 있고, 멍에를 말의 목에 맞춰주는 멍에 안장을 사용했다. 상은 청동이 있었음에도 유기물 굴레 마우스 피스를 사용했다. 이는 스텝도 같은 방식이었다. 

 상나라의 북쪽 지역은 스텝과의 교역 및 말 사육에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힘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기원전 11세기 중엽 스텝 출신의 제후국 서주가 상을 무너뜨리고 장안을 수도로 삼아 주를 건국한다. 중국에서는 이 후 수백년간 북쪽 변두리가 정치적, 군사적 힘을 주도한다.

 전차는 유용했지만 부서지기 쉬웠고, 유지 보수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전차는 1대에 최소 2기의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 공급은 꾸준히 부족했다. 기원전 제2천년기에 말 제어 방식이 변화한다. 뽀죡한 볼피스가 있는 재갈은 단순한 코걸이 보다 말을 효과적으로 제어했다. 마부는 고삐로 말을 제어하고 방향을 전환했다. 말타기가 본격화하자 말도 개량된다. 말의 공격성을 줄였고, 말의 척추부위에 사람의 하중이 실리기에 척추 부위의 강화도 이어졌다. 

 금속재갈은 개량되어 고삐를 당기면 재갈이 말의 입속 민감한 부위를 자극해 마부에 의한 섬세한 조작이 가능해졌다. 기원전 제1천년기 새로운 굴레 기술이 아시아 깊은 곳 까지 전파한다. 처음으로 기병대를 직접묘사한 유적은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벽화다. 말 두마리와 마부둘이 짝을 이루었는데 한 명이 두 마리 말을 제어하고 다른 한명이 공격을 담당했다. 당시 안장이나 등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DOM2계통의 말은 다부지고 힘이 강했으나 효과적인 기마술에는 부적합했다. 그래서 향후 능력가 지구력, 속력, 심지어 외모에도 초점을 두어 개량을 한다. 키가 큰 말에 대한 선호도 급증하여 기원전 제1천년기 내륙 아시아에서는 말의 키가 1.5m달하게 된다. 말로 인해 기마 유목민은 분쟁, 질병, 생태 파괴의 위기에서 신속한 이탈이 가능해진다. 이들은 전쟁에서 패배해도 사실상 농경 제국과는 달리 멸망하지 않는다. 넓은 초원지대로 이탈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초원 세력의 이탈이 큰 변화를 낳는다. 기원전 8세기 스텝에서의 압박으로 흑해와 카스피해로 이탈한 킴메르인이 아나톨리아 동부를 점령한다. 기원전 5세기에는 스키타이인이 흑해에 등장한다. 중앙아시에에서는 페르시아-타클라마칸 사막의 넑은 지역에 말을 타는 사카인이 등장한다. 

 기원전 700-400년 사이 초기 안장이 등장한다. 파지리크 문화에서였다. 기원전 제1천년기 효과적인 마구와 활과 화살, 가벼운 방패와 도끼로 무장하고 가벼운 비늘 갑옷을 입은 치명적 집단이었다. 말의 이런 중요성으로 인해 내륙 아시아의 비옥한 말 서식지를 통제하는 것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해진다.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등 제국의 확장은 동유럽, 중앙아시아 초원의 말과 그 말에 기반한 상업, 통신 시스템 덕분이었다. 기마를 일찍 수용한 아시리아를 중동 대부분을 점령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내륙 아시아 정복전 트라키아부터 접수한다. 이 지역은 유라시아 스텝 벨트의 서쪽 끝으로 제국에 말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적어도 기원전 4세기면 기마를 수용하여 활용한다. 중국은 견융의 침략으로 주가 쪼개져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서쪽에 위치한 진과 조는 이들 국가중 기마를 활용한다. 스텝과 인접했고 북방과도 인접해 기마병의 침입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진은 대규모 기병을 규합하여 정복전쟁으로 전국을 통일한다. 그리고 오르도스의 기마유목민도 격퇴한다. 여기서 밀려난 유목민은 조직적으로 세력을 규합하는데 이들이 흉노다. 

 진은 흉노를 막기 위해 장성을 건설한다. 흉노는 강성해져 오선과 월지를 축출하고 전략적으로 유용한 하서주랑과 타림분지를 차지한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교역과 여행을 통제했고 물자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사막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한다. 흉노는 동서양의 방대한 지역을 연결하여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갖게 도니다. 중앙아시아, 세비리아, 중국에서 대규모 인구가 유입된다. 흉노는 청동, 철로 만든 고품질의 재갈을 제작하고 안장을 단단한 목재로 내부 지지대를 갖추어 제작해 말의 처축 압박을 위로 분산하고 말과 마부의 신체적 긴장감은 낮추고, 안정성은 높였다.

 흉노가 말 서식지 대부분을 차지하자 중원은 말이 부족해진다. 중원은 말 사육에 적합하지 않아 말을 키우기도 어려웠고, 키운 말도 스텝에 비해 체격과 힘이 부족했다. 중국은 장성으로 유목민을 방어했지만 이는 양질의 말이 넘어오는 것도 막아버렸다. 한의 무제는 장건을 시켜 말을 찾게 한다. 그는 페르가나 분지에 도착해 한혈마를 발견한다. 무제는 이들의 확보를 위해 두 차례 대규모 원정을 하지만 50마리 정도 획득에 그친다. 

 히말라야의 가혹한 환경에서는 힘이 강하고 좋은 말이 자라났다. 중국은 흉노와 적대적이어서 말을 얻기 어려웠고 티베트 고원에 접근해 말을 교역한다. 티베트와 중국 남부의 저지대, 갠지스 삼각주가 연결되어 육상교육을 하는 차마고도가 이렇게 생겨난다. 

 일반적으로 초기 등자의 혁신은 한구과 중국에서 일어나다. 최초의 등자 같은 것이 3-4세기 일부 고분에 등장한다. 등자가 한쪽만 있던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안정성보다는 탑승보조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안장은 4세기에서 5세기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늘한 기후는 유목문명과 농경 문명에 상반된 효과를 가져온다. 기후가 서늘해지면 농경 문명은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여 위기를 맞는다. 반면 초원은 증발량이 적어져 초원이 습해져 오히려 풀이 많아져 유목생산량이 많아진다. 그래서 지구가 서늘해지거나 소빙기를 맞이하면 농경은 위기를 유목문명은 강성해졌다.  

 스텝의 제국들은 강성해져 농경 문명을 점령하고 제국이 커지면 그 관리를 위해 문자를 도입한다. 선비와 거란은 한자를 수용했고, 몽골은 여러 문자를 차용했다. 원은 수도 카라코룸에서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볼가까지 연결하는 공식 우편 제도를 확립한다. 이 도로망은 6만km이상이고 4만 4천 마리 이사으이 말과 양, 썰매가가 이용되었다. 도로 주요 구간에 1400개 이상의 얌이라는 공식 역참을 두고 40-50km간격으로 배치했다. 각 얌은 허가증을 소지한 여행자에게 음식과 쉴곳, 새 말을 제공했다. 원은 지폐도 발행하였고 내륙의 교통, 여행, 통신을 보호했다. 몽골은 전쟁에선 무자비했지만 유목민의 관대한 문화로 다양한 배경과 종교가 공존했다. 

 최초의 길들여진 말은 털과 피부가 두텁고, 색이 짙어 따뜻한 기후에 부적합했다. 말을 사막동물보다 더위를 못 견기도 물을 많이 먹어 아프리카에서는 물이 풍부한 지중해와 나일강 유역만 진출했다. 말은 북아프리카로는 확산했으나 오랜 기간 사하라 이남으로는 확산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말을 사막 기후에 맞게 적응한다. 털이 짧아지고 콧구멍이 넓어지고 꼬리 위치가 변해 더위에 적응한 것이다. 말은 단봉 낙타와 같이 이용디었다. 말이 주로 짐을 책임지고 낙타는 말이 먹을 물을 담당했다. 

 사하라 이남의 사헬은 초원 지역으로 말 서식에 적합했다. 그래서 이 지역에 결국 말이 도입되고 아프리카 서부의 가나왕국, 니제르 중부의 가오, 차드호와 트리폴리를 잇는 경로의 카넴등 사하라를 통제하는 이들이 말의 수혜를 입는다. 13세기 초 말리 제국이 1만 마리가 넘는 기병대를 편성했고, 16세기는 송가이 제국, 17-18세기는 오요 제국이 말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한다. 

 말은 사헬을 넘어서 더 남으로는 진출하지 못한다. 습한 환경에서 말은 새끼를 적게 낳고 새끼 사망률도 증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체파리나 각종 질병, 기생충을 견디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가 쇠퇴하자 스텝의 영향력이 강해지며 말문화가 한반도로 밀려든다. 고구려가 이를 수용하고 강성해져 5세기에 내몽골과 만주, 한반도 일부를 통치한다. 그리고 말이 이시기에 일본으로 전파된다. 

 아시아의 스텝세력은 유럽으로 진출한다. 4세기 훈족과 7세기 아바르인의 침공으로 게르만이 대거 이동한다. 유럽의 바이킹은 배로 유명하지만 그들도 말을 잘 이용했다. 


4. 다시 미대륙으로 돌아간 말

 14세기 소빙기가 되자 소빙기에 몽골의 침입, 흑사병의 여파로 쇠퇴한 유럽은 활로로 바다를 찾는다. 미대륙이 발견되고, 스페인 사람들은 히스파니올라 섬에 말을 도입한다. 그 섬은 이렇다할 포식자가 없고,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섬의 자연이 파괴되어 초원 상태로 말에 적합했다. 말은 카리브제도에서 번성해 남미로 운반된다. 말과 노새는 바다와 그 경계지역에서 교역상품을 운송했고 초기 도로도 개척한다. 

 1519년 코르테스는 말 16마리와 히스파니올라의 말을 도우언해 기마대를 편성해 아즈텍을 공격한다. 원주민은 초기 말을 보고 매우 놀랐지만 곧 적응하여 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스페인은 원주민에게 말이 가지 않게 통제했지만 그것은 느슨해 곧 말은 멕시코를 거쳐서 미국 대평원에 진출한다. 대평원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말 장비를 도입하고 자기들만의 마구도 개발한다. 말로 인해 이들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데 말을 사냥과, 전투, 의례등에 적극활용한 것이다. 북미에서 말은 번성하여 수천만 마리로 불어났고 이를 이용해 원주민은 유럽 제국과 맞서는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다.

 말은 남미로도 향했는데 스페인은 안데스 원주민 을 정복했고 말은 그들에게도 퍼진다. 스페인은 초기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착하나 마을이 전멸해 말이 아르헨티나 평원으로 퍼져나간다. 원주민은 말에 적응해 역시 북미처럼 사냥과 의례, 전투에 활용한다. 

 말은 19세기가 되면 세계 전역에 퍼지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영국에서 최초의 여객 철도가 건설된다. 철도는 화물 및 장거리 운송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하지만 말은 여전히 이용되었는데 철도 역 중간중간을 잇는 운송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부로 확장하며 원주민과 갈등을 빚는다. 1876년 미 기병대는 리틀빅혼 전투에서 원주민에 대패한다. 철도의 개선으로 초원에 이주민이 대량 유입되자 이들은 초원에 울타리를 치고 원주민의 식량은 들소를 일부러 대량학살한다. 원주민은 식량이 고갈되고 유럽인과의 접촉이 잦아져 감염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미국은 원주민 약화를 위해 초원에 산재한 수많은 말을 도살한다. 결국 이런 압박에 못이긴 원주민은 미국과 굴욕적인 협상을 맺게 되고 억압이 일상화한 보호구역에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자동차가 발명되자 말의 운명은 빠르게 바귄다. 1880년만 해도 뉴욕에 말은 무려 15만 마리였다. 사실상 자동차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말의 변만 하루 130-180만kg이 나왔고 소변만 1만 5천리터에 달했다. 말은 빠르게 자동차로 대체된다. 말은 운송수단 뿐만 아니라 전투용으로써의 가치도 상실한다. 기관총이 나오기 시작하며 기병대는 그 전투력을 상실한다. 

 이처럼 말의 가치가 상실되자 북미의 야생말을 소의 방목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간주되어 대규모 도살 대상이 된다. 그래서 미국의 말은 수천만 마리에서 1차대전 무렵에는 겨우 수백만 마리로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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