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기억에 대해 확신하지만 과학적으로 이는 매우 불완전하며 심지어 많은 개인의 조작가 허위가 들어간다. 반면 상황이나 분위기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인 예감이나 직감에 대해 사람들은 좀처럼 이를 신뢰하지 않지만 이는 이상하게 적중률이 높다. 이는 어쩌면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나뉘는 것 같기도 하다. 의식은 내가 한 일이 맞다고 설명하기 위해 조작을 잘 하는 편이고 무의식은 그런 것 없이 상황 판단으로 적응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그러기에 양자가 신뢰 정확도에서 차이가 나는게 아닐까.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전자책으로 오래전에 구매한 책이다. 책의 작가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 문체는 여러 번 책을 읽어야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독특하고 함축적이며 여러 가지를 전제한다. 그리고 남자 존재의 여러 문제를 지적해 읽으면서 여러 번 낯 뜨거웠다. 이런 낮 뜨거움은 매우 오래전 청소년 드라마 '사춘기' 십여년 정도 전의 영화 '건축학 개론' 이후 오랜 만이다.
책의 배경은 1950-60년대 영국에서 시작한다. 당시 십대를 보내던 혈기 왕성한 네 친구가 있다. 주인공인 토니로 콜린, 엘리스와 친하게 지내다 여기에 에이드리언이 합류한다. 이들은 같이 수업을 듣고 쓸데 없이 철학적인척하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그 나이대 남자들이 다 그런 것 처럼 간절히 여자를 바란다. 기성층을 꼰대로 욕하고 그들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사실 그들처럼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자살한 소식을 듣는다. 그 친구는 한 여자를 임신시켰는데 아무래도 그런 문제때문에 자살로 이뤄진 것 같았다.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도 잠시 에이드리언을 제외한 그들은 그 대단치 않아 보이는 친구조차 여성과 성관계를 해서 임신까지 시켰다는 것에 놀라고 흥분하며 질시한다. 에이드리언은 그들과 좀 달랐다. 수업 시간에도 교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뭔가 더 철이 든 것 같았으며 자신들과는 다르게 진짜 철학적인 것 같은 그런 친구였다. 에이드리언은 교수와 문답하며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기록이 만나 빚어지는 확신'이라 말한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주제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 시기 철저히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척 하는 십대 남자들에게 진짜 완전해 보이는 친구는 강한 질시의 대상이다.
고교를 졸업하며 역시 치기 어린 마음으로 곧 사라질 영원한 우정을 의미 없이 외쳤지만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서로 슬슬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한다. 역시나 진짜 같았던 에이드리언은 정말 진짜였는지 가장 명문대에 진학한다. 토니는 대학에서 베로니카와 사귄다. 베로니카는 오래 사귀면서도 달아오른 토니에게 좀처럼 몸을 주지 않아 그를 애닳게 한다. 토니는 베로니카의 집도 한 번 방문하는데 그러면서 그녀의 가족을 알게 된다. 물론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이는 중요한 장치다. 이후 역설적이게도 베로니카는 토니와 이별하면서 그에게 단 한번의 밤을 허락한다.
베로니카와 헤어진 토니는 쉽게 이별 한 척 했지만 놀랍게도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가 사귀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감내하기 어려웠지만 이를 쿨하게 용인한다.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토니는 몇 번의 연애를 하고 마거릿과 결혼했다 이혼하고 수지라는 딸을 하나 얻게 되고 그냥 저냥 인생을 보내어 60세 정도의 대머리 남자가 된다. 충격적인 사건은 에이드리언이 자살한 사건이다. 여기까지가 책의 1부다.
2부는 토니에게 한 편지가 도착하며 시작된다. 놀랍게도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토니에게 유산을 남긴 것이다. 유산은 약간의 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다. 이로써 거의 40여년 만에 토니는 베로니카를 다시 만나게 된다.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양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토니는 기분이 나빴지만 베로니카를 설득해보기로 하고 그의 오빠인 잭은 통해 이메일을 보내 만나기로 약속한다. 베로니카는 과거 토니가 좋아했던 여자인 만큼 늙었어도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토니는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베로니카가 여전히 자신을 좋아하기를 원했고 자신이 그녀를 감당할만한 남자였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대머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치기어린 토니와의 짜증나는 만남을 지속하다 토니가 40년 정도 전에 에이드리언과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를 보낸다. 토니는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만남을 쿨하게 인정했다고 기억했지만 편지의 내용은 자신이 보니게도 놀랄노자였다. 온갖 종류의 저주와 욕설이 망라되어 있었다. 어쩌면 감수성 여린 에이드리언의 자살에는 이 편지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베로니카는 토니와 마지막으로 만나면 한 펍에서 토니는 베로니카와 아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누가 봐도 에이드리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장애가 있어 보였다. 토니는 또 마음대로 매우 뛰어난 그 둘 사이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고 에이드리언은 죽어버리고 그로 인해 그 도도하고 매력적인 베로니카가 어려운 삶을 살았을 거라 추측한다. 이에 대해 토니는 강한 유감도 그리고 또 특유의 치기어린 우월감과 안도감 고소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반전은 마지막에 나온다. 사실 토니는 일전의 저주의 편지에서 베로니카의 젊은 어머니를 에이드리언에게 만날 것을 추천하는데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즉, 청년은 베로니카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었던 것이다.
토니는 작품 내내 멀쩡해보이면서도 늘 불안한 예감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에 확신을 하면서 과거를 돌이키지만 그의 기억을 형편없고 자기 중심적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기억을 틀리고 불길함 예감은 맞는 것. 그래서 책의 제목이 이러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