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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
  • 빈센트 반 고흐
  • 22,500원 (10%1,250)
  • 2023-03-30
  • : 1,955

 반 고흐는 그 유명세에 비해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다. 물론 주변의 예술가나 지인들은 그의 그림을 꽤 원하기도 하고 얻어가기도 했지만 세속적 인기는 없었던 셈이다. 판매에 성공한 유일한 그림은 '붉은 포도밭'이다. 그의 대표작은 아닌 셈이다.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반 고흐만이 아니다. 당시의 '인상주의' 화풍은 지금이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엔 매우 새로운 시도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와 상당히 많은 서신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에 비해 우리는 그의 실존적 어려움과 고민, 인간 됨에 대해 다소 살펴볼 수 있다. 

 동생 테오는 평소 심장에 지병을 갖고 있었는데 형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고흐가 죽고나서 고작 반 년만에 자녀와 아내를 두고 죽고 만다. 고흐의 동생 테오의 서신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테오의 아내가 대량으로 발견하고 이에 큰 감명을 받고 세상에 공개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고흐의 집안은 괜찮은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목회자였고 큰 아버지는 유럽 여기저기에 지점을 둔 화랑을 하고 있었다. 고흐의 아버지는 고흐를 목회자로 만들거나 세속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여러 노력을 하고 학교에도 보내봤지만 민감하고 감수성이 있는 고흐의 영혼은 그것에 걸맞지 않았다. 고흐는 큰 아버지가 운영하던 구필화랑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상주의 화풍을 접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27살이라는 지금으로 봐도 매우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결국 화가가 된 그를 집안에서는 어떻게든 정착을 시키기 위해 안트베르펜의 미술학교로 보내기도 했으나 고흐가 전형적 교육과정과 그림 그리는 방법을 거부하면서 이조차도 무산된다. 동생 테오 역시 집안의 화랑을 물려받아 일을 한다. 그리고 테오는 제법 돈을 벌었는데 이것이 고흐의 물질적 기반이 된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하는 비인기 아마추어 작가인 고흐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세계인은 고흐의 작품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빚은 무엇보다도 고흐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앞 부분은 항상 이전에 돈을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염치없게도 다시 돈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곧 그림이 팔릴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도 보인다. 

 고흐는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그림에 유화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형식으로 고흐는 색을 섞기도 했지만 혼합하려는 두 색을 가깝게 두텁게 칠해 혼합효과를 내기도 했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의 그림은 강한 질감과 두터운 느낌, 강렬한 색조, 깊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준다. 하지만 이 기법은 필연적으로 물감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고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했다. 그럼에도 고흐는 이 기법을 고수하고 대부분의 작품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고흐는 자신처럼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들을 위한 하나의 예술 공동체를 구상했다. 그들이 한 장소에 모여 같이 작업하고, 게중에 운 좋고 당대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얻는 수익을 어려움을 겪는 작가를 위해 사용하고 그런 어려움을 겪는 작가가 성장해 다시 공동체에 기여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도 망상에 가까워 친구인 고갱 하나를 영입하는데도 실패한다. 고갱도 고흐 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에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동생 테오의 경제적 유인책으로 고흐와 합류했다가 고흐의 민감함과 예술적 지향성의 다름. 그리고 프랑스 아를에 대한 실망으로 가까운 시일에 고흐를 떠나버린다.

 고흐는 고갱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동생의 결혼으로 경제적 지원이 감소하거나 끊어질 것에 대한 염려로 상당한 정신적 불안을 보인다. 지역 주민과 집주인은 그런 고흐를 정신병자로 여겼고, 그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모처럼 꾸며 놓고 오래도록 그림 작업을 했던 아를의 하숙방에서도 쫓겨난다. 고흐는 잠시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병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바깥에서 총상을 입는다. 그는 처음엔 괜찮은 듯 보였으나 갑작스레 상황이 악화되어 이틀 만에 사망하고 만다.  

 고흐의 삶은 전체적으로 매우 불행했다.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림을 그린 사촌형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동생 테오조차 형의 그림이 팔릴만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0년의 시간을 그리며 단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으니 형에 대한 애정과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쳐도 충분히 그럴만하다. 여기에 동시대의 예술가들 역시 그의 그림에 주목하지 않았다. 연애사도 불운해 고백하는 사람마다 집안의 반대, 혹은 이미 연인이 있거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이런 모든 악조건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낸게 그에겐 하나의 해방구이자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지금 그의 그림 하나하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매우 비싸게 팔리는 현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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