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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기원
  • 박정재
  • 22,320원 (10%1,240)
  • 2024-09-06
  • : 10,080

 이 책의 내용과 제목은 좀 예상과 다르다. 한국인의 기원이라면 고대 한국인에서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집단 이동과 융합, 흡수, 갈등을 생각하게 되고 그 부분을 다루긴 하지만 책의 내용은 보다 거시적이다. 한국인의 기원이란 제목을 쓰긴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동과 유럽, 북미, 남미로 이어지는 인간의 이동을 살핀다. 그리고 여기에 환경 변화가 작용한다. 지구는 타원으로 태양을 공전하고,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고 세차운동으로 인해 그것이 조금씩 바뀐다. 이로 인해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데 이러한 환경 변화가 인간의 이동과 문명의 쇠퇴 및 발전의 근원적 원인이라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그리고 책은 다른 저서들과 다르게 연대의 기준은 인간이 지구 환경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 서력1500년은 기준으로 삼는다.   

 

1. 인류의 이동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12만년 전 아프리카를 나와서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당시 유럽의 추운 지역에는 네안데르탈인이 동아시아 지역엔 데니소바인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40만년번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번성했으며 빙기와 간빙기를 무려 5-6차례 견뎌낸 만큼 추위에 대한 강한 내성과 상당한 수준의 문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데니소바인은 동아시아에 있었으며 기후가 따뜻해지자 네안데르탈인이 동진하면서 서로 교접해 혼혈아가 탄생하기도 했다. 

 13만년전 간빙기가 도래해 사하라가 습윤해지자 동쪽 지역에 초원이 생겨났다. 인간은 그 초지를 다라 시나이 반도와 남쪼그이 바브엘반데브 해협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후 다른 세력들이 간빙기가 도래할때마다 습윤해지는 사하라를 따라 순차적으로 계속 아프리카를 빠져나갔다. 인간의 아프리카에서의 이동은 여러 차례였던 셈이다. 

 7만 4천년 전 수마트라섬의 대형화산 토바가 폭발하여 환경이 악화되어 사피엔스의 수가 격감했다. 이 때 상대적으로 온난한 아프리카에 있었던 사피엔스 집단이 다시 유라시아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한 유럽의 인간 수렵채집민들은 이후 일부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리냐크 문화를 이룩하고 다른 일부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그라베티안 문화를 이룩한다. 그라베티안 문화는 약 2만 2천년전 빙하기가 가장 추울 때 번성했다. 이들은 점성이 높은 역청, 동물 뼈를 녹인 물질로 창자루를 단단히 고정해 사냥능력을 높였고 뼈에 구멍을 뚫어 바느질을 하여 옷을 만들어 추위에 적응했다. 1만 8천년 전 마그달레나 문화가 있었다. 이베리아에서 시작해 후퇴하는 빙상을 따라 전파되었다. 투창가속기를 발명하여 지렛대를 이용해 창을 더 빠르게 던질 수 있었다.

 과거 북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유럽으로는 진출하지 않아 네안데르 탈인과의 교접이 없었던 기저유라시아인 집단이 존재했다. 그래서 현대 인류의 DNA는 네안데르 탈인과 교접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기저유라시아인의 유전자가 서로 반비례하여 존재한다. 기저유라시아인은 1만 4천년전 지중해 동부 레반트에 거주한 나투프인의 직계조상이다. 나투프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최초 농경민이다. 


2. 수렵채집민과 농경민, 유목민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마지막 빙기의 최성기가 끝나고 1만 4700년전부터 약 2천년간 풍요로웠다. 수렵채집민 나투프인 그래서 농경없이도 여기에 정착하는 것이 가능했다. 정착은 농경에 우선한다는게 최근의 연구다. 하지만 영거드라이아스 한랭기가 1천년간 지속되었고 이후 급속한 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했다. 나투프인은 인구가 불어난 상황에서 타개책으로 농경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농경은 급작스럽기 보다는 이미 수렵채집민 시절부터 부분적으로 시도하거나 그 방안은 대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후 위기가 그 본격적인 시도를 부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서유럽인은 크게 레반트 농경민, 이란의 농경민, 서유럽의 수렵채집민, 동유럽의 수렵채집민 네 집단이 이주하여 혼합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집단으로 유전적 차이가 컸지만 오랜 시간 서로 융합된 것으로 보인다. 

 수렵채집민은 대개 활동반경이 넓고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식량을 찾아 이주한다. 따라서 인구 부양력이 낮고 영아와 노인 살해가 흔하다. 또한 피 정복 집단도 대개 노동력이 필요없기에 몰살시킨다. 농경민은 농경으로 항상 노동력이 필요하다. 정주 생활로 가내에서 일할 여성 노동력이 항상 필요하기에 정복하는 경우 상대편의 여성을 흡수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역사상 수렵채집민은 농경민 집단에 자주 흡수되었고 유전적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정주 농경사회에서 여성은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 발가락이나 윗팔의 뼈 변형이 그 증거다. 이는 곡식을 무수히 빻았다는 증거다. 농경으로 여성이 집안일을 담당하자 남여의 차이가 생겨났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농경민들은 인구 증가로 농토가 부족해지자 이동했다. 9천년전 레반트와 이란 농경민이 아나톨리아 서쪽이로 이동하여 발칸 반도와 지중해를 따라 이베리아까지 이동했다. 다른 무리는 도나우 강을 따라 독일로 갔고, 또 다른 무리는 인더스 강으로 향했다. 

 홀로세 초기 농경민은 북부유럽에 관심이 없었다. 농경에 부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6천년전 기후가 온난습윤해지자 북유럽에 진출한다. 북유럽에 수렵문화 대신 깔대기 모양의 토기인 푼넬비커문화가 들어선 이유다. 한편 이란에서 북쪽으로 이동한 농경민은 흑해와 카스피해에 도달했다. 이들은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후손과 섞여 초원지역에서 유목문화를 발달시킨다. 이들이 바로 얌나야문화다. 

 얌나야 문화는 5300-4600년전에 존속한 청동기 문화권이다. 대형고분인 쿠르칸을 남겼고 바퀴와 말을 동시에 활용한 최초의 집단이다. 말은 초원지대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처음엔 식량이었겠지만 추위에 잘 견디고 바퀴살이 발명되어 수레가 끌만한 무게로 가벼워지자 운송수단이 되었다. 수레는 얌나야 문화에서 전차로 거듭났다. 유목민은 얌나야 이래로 농경민에 숫자가 적음에도 군사적으로 우위를 보일 때가 많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병대였고, 야금술에도 앞섰다. 거주지 자체가 말 사육에 최적지이자 금속산지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언젠가 기마술을 익혔다. 이로 인해 1인당 돌볼 수 있는 가축의 수가 증가하면서 목축의 효율성도 증가한다.

 얌나야인의 확장은 쿠르간 분묘 문화의 확산과 인도유럽어의 확산을 가져왔다. 4900년전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홀로세 기후 최적기가 끝나며 기온이 하강한다. 얌나야 인은 초원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유럽지역을 장악한다. 이들은 동쪽으로도 이동하였는데 이 일파가 아파나시에보 문화를 이룩한다. 얌나야인은 중앙아시아로 진추랳 신타슈타문화와 안드로노보 문화를 이룩했다. 안드로노보문화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더스 계곡으로 진출한다. 농경민이 이룩한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문화가 기온하강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쉽게 진출한다. 그 후손들은 2800년전 서쪽 이란 고원도 침공한다. 그래서 이란의 경전 아베스타와 인도의 경전 라그베다는 모두 샨스크리트어로 내용도 매우 유사하다. 두 종교 모두 생명의 나무와 세상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산을 숭배한다. 라그베다의 인드라 신은 초원지대의 초자연적 지배자다. 인도의 고대왕은 즉위하면 말희생제를 치뤘는데 말은 고온습윤한 인도에서 자생하기 어렵다. 이는 인도의 지배집단이 유목문화임을 말해주는 증거다.

 

3. 아시아로 향한 사피엔스

 아프리카에서 나와 동으로 향한 인간은 해안을 따라 이동했다. 아라비아, 인도, 순다랜드, 사훌랜드의 순이다. 빙하기에 해안선이 내려가 인도차이나 반도와 섬들이 연결되어 순다랜드라는 대륙을 형성했고, 호주와 뉴질랜드, 테즈매니아, 파푸아뉴기니가 모두 대륙으로 묵여 사훌랜드를 형성했다. 순다랜드에서 추운 북쪽으로 향한 이들이 티안유안인이 되었고, 동남아사이에 남은 집단이 호아민 집단이 된다. 

 티안유안인은 중국 남부와 북부, 만주, 몽골지역에 자리잡았다. 여기서 더 동으로 간 것이 일본의 조몬인이다. 이들은 동쪽에 격리되어 티안유안인과 유전적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일본 열도는 당시 숲이 많고 바다에 인접해 생산력이 높아 수렵채집민이면서 정착이 가능했다. 1만 6천년 전 조몬인은 토기를 사용했는데 이건 정주의 흔적이다. 2800년전 한반도 기원 농경민에 의해 크게 위축되는데 그래서 현대 일본인의 유전자는 한반도 기원 농경민이 90% 조몬인이 10% 정도다. 

 중국 북부의 아무르 강 유역의 티안유안계통에서 아무르강 집단이 분기된다. 이 집단에서 현대 동아시아인의 특징은 두꺼운 모발과 삽모양의 앞니, 땀샘 관련 유전자가 발견된다. 이 유전자는 추위에 적응하며 생겨난 것이며 기후가 더 한랭해지자 아무르집단이 한반도로 남하한다.  

 신석기 시대 농경으로 인구가 급증한다. 아무르강 집단은 수렵채집민이었고 황허는 동아시아 최초로 조와 기장을 작물화했다. 동아시아 유전자 구성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랴오허강은 반농반목문화였다. 이들은 기후가 한랭화하자 적극 남하하여 현대 한국인과 일본인의 형성에 기여한다. 양쯔강 중류는 세계 최초의 벼농사 지역이었다. 이들은 6-7천년전 해안에 도달했고 일부가 북으로 이동하여 황허와 섞이고 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과 부딪혔다. 이들은 서로 썩여 동북아시아 현대인의 유전자에 기여한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 이후 동북아시아인은 중원, 랴오둥, 한반도로 이동한다. 양쯔강 하류에서 남으로 이동한 이들은 대만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스터, 마다가스카르까지 이동한다. 


4. 빙기와 간빙기의 원인

 온난한 신생대 3기가 끝나고 260만년전 부터 기온이 하강하여 4기가 시작된다. 4기는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로 구분한다. 플라이스토세는 간방기가 주기적으로 도래했다. 이는 지구 공전궤도의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 자전축의 세차운동 때문이다.

 플라이스토세의 간빙기는 20히 이상이다. 마지막 빙기 후 도래한 간빙기가 지금의 홀로세다. 대략 70만년전부터 지구는 빙기 11만년 간빙기 1만년의 기후 사이클이 있었다. 홀로세는 1만 1700년전 시작했다 지금은 주기상 빙기가 와야할 시점이지만 지구 공전 궤도의 이심률이 낮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홀로세의 간빙기는 향후에도 수만년간 지속될 예정이다. 

 인간은 20만년전 출현했다. 13만년전 빙기가 끝났고, 홀로세 이전 간빙기인 미이안 간빙기가 시작되었고 이때 사하라가 습윤해져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나올 수 있었다. 대략 10만년전, 7만 5천년전, 5만 5천년전, 3만년전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빙하기에도 열대 수렴대가 북쪽으로 확장했다. 

 11만년동안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2만 5천년 주기로 간방기가 도래했다. 그리고 1500년 주기의 아간빙기가 25차례 도래했는데 이는 대서양의 열염순환때문이다. 남대서양의 따뜻한 물은 고위도로 가서 한랭한 지역을 덥힌다. 그리고 동시에 이동하며 편서풍과 태양복사로 증발이 많아져 염도가 증가해 수온이 낮아지고 밀도가 높아져 심해로 하강한다. 그린란드 부근에서 하강해 다시 남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아간빙기가 오면 빙하가 녹아 담수가 대량 유입되어 대서양 고위도에서 물이 심해로 하강하지 않아 열염순환이 약화된다. 그러면 북반구가 추워져 빙하가 증가하고 다시 담수 유입이 줄어 염원순환은 강화된다. 이 반복이 아간빙기의 주기원인이다.

 홀로세의 또 다른 기후 변화 원인은 적도태평양 해수온도의 변화다. 적도 서태평양은 강력한 무역풍으로 항상 따뜻한 바닷물이 몰려든다. 하지만 무역풍이 약해지면 기온이 내려가며 바닷물이 북과 동으로 이동한다. 그 결과 서태평양 해수 온도가 하강하여 인도네시아와 호주 일대에 가뭄과 산불이 증가한다. 동태평양은 기온이 상승해 홍수가 나는데 이것을 엘니뇨라 한다. 4-7년 주기이며 아기 예수라는 뜻이다. 이는 성탄절 즈음해 이 현상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홀로세 후기 400-60년 주기로 서태평양 온도가 내려갔는데 그러면 한반도를 포함한 북반구 여러 지역이 추워진다.

 또 다른 기후 변화 원인은 태양 흑점변화다. 태양 표면 흑점수가 늘면 태양에너지가 강해지는데 이 흑점 주기는 1년이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태양활동의 변화가 사실상 열염순환과 장주기 엘니뇨의 원인이라 본다. 


5. 홀로세의 기후 변화와 문명

 8200년전 갑자기 많은 담수가 대서양에 유입되어 열염순환 교란으로 기온이 3.3도나 내려가 단기 한랭기가 도래한다. 이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많은 수렵집단이 남하한다. 하지만 8000년전은 기후 최적기로 고위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무려 3-4도, 중위도는 1-2도 저위도는 비슷하게 기온이 올랐다. 온난화의 영향은 항상 고위도에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이 시기 전세계에 초기 문명이 많이 나타난다. 

 황허강 이북에는 츠산문화가 있었고 7천년전에는 양샤오 문화가 있었다. 랴오허강은 싱릉와 문화가 있었다가 6700년전 훙산문화가 생긴다. 훙사문화는 중국의 다른 지역과 다르고 옥을 이용한 공예품이 발달했다. 이는 당시 이 지역이 유목이나 목축 기반임에도 계급이 분화했음을 의미한다. 이 신석기 시대 훙산문화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이 현대 한국인이다.  

 고조선은 시기상 훙산문화보다는 샤자덴 상층-하층 문화와 시기적으로 관련한다. 4200-3700년전 가뭄과 추위로 사람들은 괜찮은 환경으로 밀집했고 그러면서 문화집단이 생겨난다. 

 8200년전 외에도 4200년전에도 기상 이변이 있었다. 이는 엘니뇨 때문으로 동북아시아의 기후가 건조해졌다. 그래서 지구 상의 여러 문명이 붕괴한다. 아카드 문명, 나일강 고왕국, 인더스 하라파, 중국 룽산문화, 양쯔강 하류 저장성 량주 문화 등이 붕괴했다 기후가 한랭해지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서식지의 악화로 인구가 살기 좋은 곳으로 유입되어 갈등이 유발된다. 이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 엘니뇨는 400-600년 주기로 이 시기마다 여러 문명이 붕괴했다.

4200-3900년전 세계 여러 문명 붕괴

3700년전 이집트 중왕국 붕괴

2800-2700년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2300년전 한반도 벼농사 문화 쇠퇴

1700년전 한제국 멸망, 삼국시대 도래

1200년전 멕시코 테오티우칸 문명 멸망

600년전 유라시아 흑사병 유행


6. 한반도의 인구 유입

 한반도에는 대략 5500년 전 부터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격은 아니고 수렵채집의 보조수단이었다. 3000년전에야 정주 농경이 본격화 하였다. 안정적 기후로 숲의 생산성이 높고 삼면이 바다라 어패류가 많았다. 3700-3200년전 외부에서 농경 집단이 들어온 후 농경이 본격화한다. 4천년전 양쯔강 량주문화와 황허강 중산 문화 모두 기후변화로 쇠퇴한다. 이들은 동해안으로 이주해 혼합되고 산둥반도, 랴오둥, 한반도 남부 ,일본으로 이동했다. 이들의 빈자리는 북방 유목민이 차지한다. 기후가 나빠질때마다 북방민은 한반도로 남하하였고 이들은 선진문화도 같이 전파한다. 

한반도는 동아시아에서 토기 사용이 가장 늦을 정도로 고대인이 선호하는 지역은 아니었다. 산지가 많았고, 생산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기온이 지나치게 한랭화하면 남하하며 일부가 한반도로 내려왔다. 홀로세 후기가 되면 동아시아 전역으로 농경이 확대되며 인구 압박으로 남쪽을 향한 갈망이 커졌는데 이러면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도 본격적으로 선택 된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는 랴오허 지역의 인구의 영향을 많아 받았는데 이 지역은 특히 한랭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기후가 악화될때마다 이 지역 인구가 남쪽으로 이동하며 한반도로도 향한 것으로 보인다. 3200년전쯤 한반도 금강 유역의 송국리 문화는 이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동북아시아의 기후는 3600년 전부터 습윤해졌고 때 마침 전파된 벼농경 덕분에 한반도의 인구가 증가하고 민무늬 토기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다. 

 한반도의 송국리 문화는 2800년전 전성기였다가 차츰 쇠퇴하여 2300년전 거의 소멸한다. 이들이 일본 규슈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를 연다. 한반도는 송국리 문화가 사라져 무주공산이다 다시 북방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빈틈을 채우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유전적 유사성이 높음에도 언어가 전혀 다른데 이는 송국리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농경민은 송국리 문화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살아남아 그들의 언어를 조성했고, 한반도에는 이들이 거의 사라져 새로운 반농반목민이 언어를 형성한 것이다. 

 2800년전에서 시작되어 5-600년 지속된 저온기를 철기 저온기라 한다. 이 때 서유라시아에서는 스키타이가 대대적으로 이동하고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한반도는 벼농사가 쇠퇴하고 북방민이 유입하고 토착민과 갈등한다. 이후 200-300년간이 로마 온난기다. 로마는 전성기를 맞고 중국은 한이 들어선다. 이후 1-100년간 태양 흑점수가 감소해 혼란기가 찾아오고 100-200년에는 흑점수가 증가해 로마는 5현제 시기가 온다. 200-300년은 다시 흑점수가 감소해 대 혼란기가 오고 중국은 삼국시대를 맞는다. 374-468년은 흑점수가 뚜렷히 감소해 기온이 내려갔는데 이 시기가 훈족이 이동한 시기이며 게르만의 대대적 이동을 초래하여 로마멸망의 원인이 된다. 

 한반도는 4세기 후반 부터 기온이 하락했는데 420년이 가장 기온이 낮았다. 고구려 장수왕의 천도는 427년인데 기후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주된 Y염색체는 C2(15%아무르), D(2%조몬), N(5%훙산), O1b2(32%샤자덴), O2(40%), Q(2%)다. 역시 샤자덴의 영향이 가장 강함을 보인다. 이는 기원전 3세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큰 변화가 없다. 한국인과 유전적 조성이 가장 비슷한 것은 역시 북중국인이다. 

 일본은 야요이 문화에 이어 다시 한반도 도래인이 들어가 야마토 문화를 형성했는데 이들이 우리와 조상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어는 일본 야요이 시대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에 지금의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7. 기후 변화와 문명의 쇠퇴

 책은 기후의 주기적 한랭화와 문명의 쇠퇴를 강조한다. 인간은 다른 생물처럼 정주여건이 좋으면 인구를 불린다. 하지만 기후가 안좋아지면 인구 압박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즉, 인간 이주와 확장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후의 쇠퇴는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다. 기후가 좋으면 각 문명의 인구가 늘고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지만 그 상태에서 기후가 나빠지면 생산성이 악화하여 인구 부양이 힘들고 갈등이 생긴다. 특히 영양상태가 나빠져 전염병이 창궐하기 쉽고, 외부인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침투하고, 사회갈등이 심해져 문명이 붕괴하기 쉽상이다. 

 4200년전은 매우 한랭했다. 이후 1000년마다 기온이 상승하는데 3400-2800년은 청동기 최적기로 미케니, 히타이트, 이집트 신왕국이 전성기였다. 3200년 갑작스런 기후 변화로 문명이 쇠퇴하고 해양민족이 침략해온다. 2800-2300년전은 철기 저온기로 이 기시는 축의 시대다. 세계 10개의 종교가 이 때 탄생하는데 기온 저하로 인한 식량부족과 사회혼란이 종교의 도래와 관련이 깊다. 철기 저온기에는 게르만이 남부로 내려오고 스키타이는 서부로 이동했으며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 2250-1600년전은 로마 온난기로 로마의 전성기, 중국은 한이 융성했다. 이후 중세 저온기가 오며 게르만 대이동이 일어나고, 훈족이 이동했으며 중국은 삼국시대가 된다. 이시기 한국의 삼국도 쇠퇴하였고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다. 반면 아라비아는 강수량이 증가하여 초지가 많아져 전투와 상업에 필수적인 낙타를 많이 키울 수 있었고 쇠약해진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를 상대로 세력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서기 800-1200년은 중세 온난기로 중국은 송이 전성기였고 고려도 전성기를 맞이한다. 13세기는 다시 기온이 하강했고 몽골의 침입과 쇠퇴기가 있었고, 1280-1350년에는 소빙기가 찾아와 흑사병이 창궐했다. 1620-1720년에도 한랭기가 찾아왔는데 당시에는 30년전쟁으로 800만이 사망했으며 한반도에는 경신대기근이 찾아온다. 또한 명청 교체가 일어났고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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