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듬달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군대시절 수요일마다 안보교육을 한다며 작업에 한창 바쁜 군인들을 끌고 와 교육관에서 초록색 책자(포켓북만한)를 나눠주고 일장연설을 하던 기억이 있다. 까맣게 그을린 이마를 긁적거리며 만화책을 줘도 글씨가 눈에 들어올까말까한 어느덧 단순명료해진 군바리에게 4포인트도 안될 것 같은 글씨에 자그만 책을 주는 건 꿈나라로 가라는 간부의 묵언의 배려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는지 수면제같은 연설로 늘어놓는 간부들은 끊임없이 꾸벅거리는 날 감동이 아닌 얼차려로 일깨우곤 했다. 어느덧 안보교육의 주제였던 '우리의 주적은 공산당'은 '우리의 주적은 간부들'이란 말로 내 무의식속에 새겨지고 말이다.
덕분에 군대를 갔다온 지금도 공산당에 대한 혐오감이나 거부감은 덜한 편이다. 명색이 초등학교 시절 이승복어린이에 대한 반공웅변대회에서 상도 탄 기억도 있는데도 말이다.(자랑하려고 한 말은 아니고^^)
공산당. 이만큼 빛이 바래고 닳고 닳은 말도 없다. 예전엔 빨갱이하면 치를 떠는 어른들을 보며 덩달아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고 그 시절 동화책에도 빨갱이는 무서운 도깨비같이 그려지곤 했었다.(개인적으로는 발가벗어서 빨갱인줄 알았더라는. 지금 생각하면 바바리맨이미지 정도?) 하지만 어느덧 빨갱이보다 무서운 것이 많아지고 또한 그만큼 둔감해져버린 지금 2000년대는 좀비가 뛰어다니고 내장정도는 터져줘야 좀 무서운데할 뿐 빨갱이 공산당에 소름이 돋고 이를 갈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공산당이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체제였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견했던 이념이었지만 오히려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지는 아이러니를 낳으며 공포스러웠던 존재는 순간 세계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이 세상에 순수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말았고 냉전의 위협에서 벗어난 세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잠시 잊었다. 아직 순수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공산국가가 있다는 것을. 맞다. 바로 북한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틀리진 않는 것 같다.
따라서 모든 세계가 웃고 있을때 같이 웃을 수 없는 유일한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 한국이다. 겸언쩍어 따라 웃는 척해도 어느 유행가가사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에게는 역사의 잔재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에게 엄연한 현실이기에.
덕분에 한국인들은 아주 기묘한 위치에서 살고 있다. 19세기의 잔재인 공산주의와 대치한 21세기 세계최고의 IT국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국민에 의한 여야의 교체가 이루어진 민주국가로서 김일성 김정일로 대변되는 일당 독재의 정치상황을 마주보는 상황이니 말이다.
따라서 386세대였던 이 책의 작가 이상엽씨는 혼란스러웠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몸소 겪었던 유일한 세대였으니까 말이다. 그의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어린시절, 군부독재에 맞서 자유를 외치며 최루탄을 산소삼아 호흡하던 시절, 그리고 어느덧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묻혀 국민연금에 한탄하고 연말정산을 위해 현금영수증을 챙기는 지금 자신을 바라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세뇌를 받듯 미워해고 타도해야할 공산주의의 시발점이었고 아직도 죽은 레닌이 살아있는 듯 박제되어 있는 그 곳, 우리의 역사를 일그러뜨린 진앙지, 바로 러시아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쓴 이 책의 형식을 이루는 정서는 낭만주의이다. 아마도 여행의 추억만을 퍼올리기엔 그의 42년 된 우물은 너무 깊어진 듯 했다. 하지만 사진작가답게 그의 시선은 평범하지만 세심했다. 감각적이진 않지만 잔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러시아를 담기 좋았다. 그가 보여준 러시아의 겉모습은 이미 세련되고 감각적인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그는 현대화되고 자본의 바람이 부는 러시아의 본모습을 마치 엑스레이를 찍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엑스레이에 투사되는 마지막 이미지에는 언제나 레닌이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고 수업료를 벌기위해 핸드폰 홍보를 하는 타냐가 있는 거리에도, 졸업여행을 온 시골여고생들이 미국식 패스트푸드를 먹는 도시에도, 미니스커트 아래 내뻗은 하얀 허벅지를 더듬고 그의 목덜미에 숨결 내뱉는 연인의 밀회장소였던 붉은 광장에도 레닌은 있었다.
그는 점점 레닌을 연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레닌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잊혀지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를 보며,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구나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더불어 그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한국인을 닮은 우리와 비슷한 민족양식을 공유하는 민족들도 알게 된다. 우리의 노래 '아리랑'이란 말이 그네들의 말에도 있고 아리랑, 쓰리랑이란 말이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로 쓰인다는 사실은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의 가슴을 짠하게 한다.
덕분에 그는 적의 소굴에서 고향을 찾은 격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건 필연일지 모른다.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사의 시작이자 그에 휘말린 개인사의 시작이 공산주의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너무도 익숙했고, 모든 것이 금방 나타나고 사라지는 지금, 공산주의의 환영은 이젠 그에게 향수처럼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내리지 않는 백야의 그림자가 더욱 짙음을 그는 느끼며 세련된 현대 러시아의 모습에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사람의 냄새를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이 들었는지 거리에서 심한 애정행각을 하고 담배와 술을 마시는 러시아 청소년들을 보며 염려스러운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꼰대처럼 말이다.
아마 그는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남아있던 공산주의의 허상이 이 여행과 더불어 완전히 사라졌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레닌의 박제를 보며 이젠 흙으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그의 안쓰러운 마음에서 더이상 이념이 아닌 사람이 느껴지기에 그의 여행이 헛되지 않음을 또한 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자그마한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니 모든 여행기가 그렇듯 여행을 마치는 부분이 아쉽다는 점이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 그리고 그의 시선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이 또한 궁금하다. 여행의 시작은 낯선 곳이겠지만 그 마지막은 언제나 고향이기 때문이다.
시차만큼이나 아직은 가지고 있을 고향에 대한 이질감을 조금이나마 담아주었다면 이 여행기의 마지막이 가슴 뭉클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마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지도자가 악수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