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는 읽었던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새로웠던 부분들이 있었다. 역시나 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 속에 김구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김구 후손들이 김구에 관한 판권을 열어두어서 김구에 관한 글들을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재단 사업을 통해 김구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오늘날에도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많이 힘을 쓰고 있다. 특히 백범일지 글짓기 대회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 것들을 보면 나라에서 해야할 일들을 후손이 직접 나서서 하고 있다는 생각들이 들면서 대대손손 이 집안은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김구는 독립이 되기만 한다면 이 나라의 문지기가 되도 좋다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으나, 결국엔 임시정부 수장에 까지 오르게 된다. 헌데 그게 그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도 아니고, 좋은 학벌을 가져서도 아니다. 마음을 오로지 독립을 위해 썼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런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선호한다. 위인전을 보면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 이런 패턴이 일반적인데..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아이들한테 주고 싶지가 않다. 척박한 환경에서 노력해서 미래를 바꿔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정이 간다.
내가 김구 이야기 중에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김구가 과거시험을 접고,(당시 과거 시험의 합격자는 이미 정해진 때라.. 그 사실을 알게 된 김구는 과거 시험을 포기한다) 관상을 공부하는데, 책에서 배운 내용으로 자기의 얼굴을 봤더니만 오로지 천한 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책에 나온 구절- 얼굴 좋은 것은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은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를 가슴에 새기고 오로지 마음 쓰는 데에 온 힘을 다한다. 결국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백범일지는 이렇게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가는 백범의 생애게 담겨있어 귀감이 된다.
김구가 생각하는 나라에 대한 모습들은 오늘날 읽어보아도, 정말 감탄할 정도다. 특히 문화에 힘을 써야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나라가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고 나아가야할 바인데, 국가 형성도 제대로 채 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선지자적 주장을 펼쳤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일제 식민지는 36년간 지속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20년이면 사람들은 희망을 잃는다. 실제 독립운동에 힘을 썼던 많은 사람들이 독립은 희망고문이라며 돌아섰고, 심지어 친일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는 독립전쟁을 계획하며 끝까지 독립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다. 이봉창, 윤봉길과 같은 독립운동가의 의거들이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그러하기에 의거가 실패로 끝났어도 결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라는 말도.. 다시 읽으면서 참 가슴에 와 닿았다.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읽으면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들이 선대의 사람들이 목숨걸고 지키고자 했던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다시 읽어도 참 좋았던 백범일지
*책속의 말말*
1. 이 책에 나오는 동지들 중에서는 생존해서 독립 사업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이도 많다.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지만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 시체로 발판을 삼아 우리 민족의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 민족의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앞서 세상을 떠나간 동지들이 다 이러한 일을 하시고 간 것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한다. 나도 비록 늙었으나 앞으로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는 아니할 것이다.
2. 이 일지를 기록하여 전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나를 본받으라는 뜻이 결호 아니다. 나는 너희들이 역사상 많은 위인들을 배우고 본받기를 원한다. 나를 볻받을 필요는 없지만 너희들이 성장하면 아비의 삶을 알 길이 없겠기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
3. 집도 가난한데다 나이 겨우 열일곱에 아이를 얻었으니 어머님은 항상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셨다. 젖이 부족해서 암죽을 끓여 먹이기도 했고 아버님이 나를 품고 이웃 산모에게 가서 젖을 먹이기도 하셨는데 먼 친척 할머니인 핏기댁은 밤늦은 시각에도 싫어하는 표정없이 젖을 주셨다고 한다. 내 나이 열살 때쯤 그분이 돌아가셨는데 텃골 동산에 있는 그분 묘를 지날 때마다 나는 경의를 표하곤 했다.
4. 준영삼촌 일화(술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가족회의를 통해 발뒤꿈치 근육을 잘라버렸다) 후 어머님은 "우리 집안의 많은 풍파가 모두 술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너마저 술을 먹는다면 나는 차라리 자살하고 그 꼴을 안 보겠다."
: 나는 이 일화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집안에 대물림되는 안좋은 인습들을 끊는 방법이 엄마의 교육이란 생각을 하면서..
5. 안진사는 정근과 공근에게는 언제나 "글을 읽어라." "써라"고 독려했지만 그가 맏아들 중근에게 공부 않는다고 야단치는 것은 보지 못했다. - 안중근의 옥중 진술에 의하면 그가 일찍이 초패왕과 같은 장부의 삶을 살겠다고 밝히고 난 뒤부터 안진사는 안중근에게 공부를 재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6.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쉽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찌 알수 있겠는가? 아무쪼록 성현의 발자취를 밟아 가도록 하게. 예로부터 성현의 자리에 이른 자도 있고 좀 모자라는 자도 있으며 중도에 자포자기 하는 짐승만도 못한 자도 있다네.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고 끊임없이 고치고 나아가게. 목적에 이르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즐거움의 뿌리니 상심 말게. - 고능선
7. 소선생은 주로 의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그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것,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에는 판단 실행 계속의 세 단계를 밟아 성취해야 한다는 것 등 여러가지 가르침을 주셨다.
8. 백성들이 의를 붙잡고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죽는 것은 신성하게 망하는 것이지만 백성과 신하가 모두 적에게 아부하다 꾐에 빠져 항복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일세.
9. 부모님은 내가 태어날 때도 많은 고생을 하셨고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천배 만배의 고생을 더 겪으셨다.
10. 일반 농민들 중에는 합병이 무엇인지 망국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도 많았다.
11. 그러고 보니 나라는 망했지만 백성은 망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평소에 한인 정탐꾼을 몹시 미워해서 여지없이 공격했는데, 내게 공격 받은 정탐꾼들까지도 나를 일러바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제자로서 형사가 된 김홍식과 학교직원인 원인상 등은 나의 행적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들도 이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애국심이 남아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조차 이같이 나를 동정해주니 나는 최후의 한숨까지 동지를 위해 싸우고 원수의 요구에 응하지 않ㅇ리라 결심했다.
12. 왜놈이 신문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가혹한 고문, 둘째 굶기는 것, 마지막 한가지는 온화하게 우대하는 방법이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마지막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13. 매일 아침저녁 음식 냄새를 맡을 때면 나도 남에게 해가 될 말이라도 해서 밥을 받아먹을까, 또 아내가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서 좋은 음식을 해다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중국 한나라 때 소무가 흉노에게 잡혀 19년 동안이나 감옥에 굶주리면서도 옷 솜털을 씹어 먹으면서까지 끝내 절의를 지켰다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또한 허기진 알몸으로 고문을 받으면서 "몸은 욕보일 수 있을 지언정 정신은 뻇을 수 없다."고 소리쳤던 전날의 기개를 생각하기도 했다.
14.애초에 나는 임시정부의 문지기 되기를 청했으나 끝내는 경무국장 노동총판, 국무령, 국무의원, 주석으로 중임을 거의 다 역임했다. 이것은 나 개인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인재난과 경제난 때문이었다.
15. 하와이의 안창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임시정부를 지키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그런데 당신은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하고 싶은가? 우리 민족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돈을 보내주겠다"
16. 기미년에 중국으로 건너온 후 벌써 10여년 그간 지나온 일 중에 중요하고 놀라운 것도 많으나 독립 전까지 절대 비밀로 해야하기 때문에 너희에게 일일이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 극히 유감이다.
17. 성공과 실패의 영욕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30여년 힘들게 싸웠다. 상 권을 쓸 당시 나는 근 10년 임시정부를 지키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운동이 점점 힘을 잃어 정부라는 이름마저 지키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해 지는 외딴 성에 슬픈 깃발 날리듯 암담한 시기였다. 독립운동도 잘 안 되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 무슨 일이든 과감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침체된 독립운동을 새롭게 할 목적으로 미국 하와이 동포들에게 편지하여 경제적 후원을 부탁했고 피끓는 의사들을 찾아 내어 의거를 계획하면서 백범일지의 상권을 집필했다. 그 후 이봉창의 동경 의거와 윤봉길의 홍구 의거가 천만다행으로 성공하였으므로 쓸모 없는 이몸도 최후를 고할까 하여 본국에 있는 자식들이 성장하여 해외로 나오거든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상권을 등사하여 미국 하와이의 몇몇 동지에게 보냈다.
18. 지금 하권을 쓰는 이유는 내가 힘써 싸운 자취를 남겨 이를 보고 숱한 과오를 거울삼아 같은 잘못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19 임시정부 수립후 국제 외교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으나 중소미 등에서는 비공식적인 도움만 가끔 있었을 뿐 공식적인 지원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한국의 독립을 공식 선포했고 중국의 입법원장 손과는 일본 제국주의를 부수러면 중국이 한국 임시정부를 승인해햐 한다고 말했다.
20. 일본의 강압과 독립운동의 퇴조는 날이 갈수록 액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임시정부의 직무도 멈추고 투항하거나 귀국하는 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 홍구 사건 이후 내외국인들의 임시정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해마다 재정수입도 증가했다.
21. 세상은 고해라더니 살기도 어렵거니와 죽기 또한 어렵다. 자유를 잃으면 자살도 쉽지 않다.
22. 이봉창 - 저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
일본 천황을 저격했으나 명중하진 못했다- 한인이 일본에 동화되지 않은 것을 세계만방에 확실히 증명한 것으로 사실상 성공
23. 세상에 이상한 일도 아 있다. 윤봉길 의거 직후 상해에 있는 일본인들의 유인물에 "김구 만세!"라고 쓴 내용이 뿌려졌다는데, 실제로 얻어 보지는 못했다. 일본인이면서 우리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주는 자도 여러 명 있었다. 이번 정보도 일본 영사관의 일본인 관리가 보내 준 것이었디.
24. 자네의 생명은 상제께서 보호하시는 줄 아네. 사악한 것이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지.
25. 왜적의 항복-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26. 옛말에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고 했는데 나는 문인들이 글재주로 과장하여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 폭격당한 곳을 보니 그 말이 쓰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7. 전쟁으로 살기가 어려워지자 옛날처럼 독립정신을 굳게 지키며 일본의 앞잡이가 되지 않은 사람을 불과 10여명밖에 없었다.
28. 일본의 박렬 동지에게 부탁해 조국 광복에 몸바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골을 환국시키게 했다.
*나의 소원 중*
1.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지만 그것도 바람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첨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운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땅위에 남는 것이다.
2. 현실의 진리는 국가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 현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3.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언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을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을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깨달을 때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4.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차듯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5.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되,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데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료에게 주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이다.
6.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뺴앗기는 것이다.
7. 문화를 사랑하는 일-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