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노숙자들이 사는 육교 있잖아." 여자는 방금 씻고 나와 주방 식탁에 앉은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육교가 있어?" 여자는 저녁을 먹으며 서울역 인도육교와 그 육교에 사는 사내들에 대해서 말했다. "근처에 가지 말고 빙 둘러가. 그거 살 썩는 냄새야. 사람이 산 채로 썩어들어 가는 냄새라고."
억새다발 너머로 청색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의 색이 지금처럼 단단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단단해서 푸른빛이 도는 강철의 반들반들한 표면처럼 느껴졌다. 어떤 것도 하늘을 뚫고 그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강철 같은 하늘이 억새밭 저 너머 마을까지, 마을 너머 산머리까지, 그리고 자갈톱 너머 하구까지, 하구 저 너머 잿빛의 바다까지 뻗어 있었다. 그는 백팩을 열어 서울에서 사온 번개탄을 꺼내 비닐포장을 뜯었다. 그러곤 아이들이 뒷좌석에 먹다 둔 버터쿠키 양철 케이스를 조수석 바닥에 뒤집어놓고, 번개탄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인간의 선량함이 그냥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량함은 자기와의,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와의 투쟁을 통해 어렵사리 얻어지는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