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다 보면 내용보다 먼저 표지에 시선이 머무는 경우가 있다. 나응식 수의사와 애슝 작가가 함께 만든 『오늘 묘생』도 그런 책이었다. 상자 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두 마리 고양이의 모습이 묘하게 발길을 붙잡는다. 표지를 벗기면 집사 윤이의 품에 안겨 있는 고양이들이 나타나는데, 그 순간 이 책은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바라보게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묘생』은 보호소 출신 고양이 미미의 시선으로 기록된 일기 형식의 에세이다. 미미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새로운 집에서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얼핏 보면 귀여운 고양이의 성장기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것은 고양이보다도 관계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미는 처음부터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 앞에서 경계하고 망설인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작은 기대도 품고 있다. 보호소를 떠나 새로운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설렘은 오히려 인간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느끼는 감정과 닮아 있다. 그래서 미미의 이야기는 고양이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책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고양이의 행동을 단순히 귀여운 장면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자 속에 들어가 안정을 찾는 행동, 발톱을 긁으며 영역을 표시하는 습관, 먹이를 숨기려는 본능 같은 것들이 왜 나타나는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오랫동안 동물을 진료해 온 나응식 수의사의 경험이 글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는 고양이를 더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자신의 본능적인 감정까지 돌아보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미가 안전한 집에 살면서도 여전히 먹이를 숨기고 싶어 하는 본능과 싸우는 장면이었다. 머리로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몸은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비슷하다. 이미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전의 상처 때문에 망설이고 경계할 때가 있다. 미미의 고민은 고양이만의 고민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고민처럼 느껴졌다.
윤이와의 관계, 그리고 함께 사는 고양이 치치와의 관계가 조금씩 깊어지는 과정도 무척 따뜻하다. 미미는 단번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조금 가까워졌다가 다시 거리를 두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경계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늘 직선으로 성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다가가기도 하면서 천천히 쌓여 간다. 『오늘 묘생』은 그런 관계의 속도를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는다.
애슝 작가의 그림 역시 큰 매력이다. 동글동글하고 따뜻한 그림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하지만 단순히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글이 설명하지 않는 감정의 결을 그림이 채워주고, 그림 속 정지된 순간에 글이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이 책은 글과 그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관계의 속도'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종종 관계가 빠르게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미는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마음을 연다. 오늘은 오늘만큼, 내일은 내일만큼. 그렇게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관계란 어느 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100여 년 전,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통해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 사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 『오늘 묘생』은 또 다른 고양이의 눈으로 관계와 신뢰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고양이의 시선은 여전히 인간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창이 되어 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결국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