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이 세 개라면 선은 세 개, 점이 네 개라면 선은 여섯 개가 된다. 점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연결의 가능성은 훨씬 더 크게 확장된다. 문학도 비슷하다. 서로 다른 작가의 세계가 만날 때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의 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 『근접한 세계』는 바로 그런 “연결의 실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한국의 소설가 김연수와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공통의 주제인 ‘윤리적 딜레마’를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쓰인 두 편의 소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이 옳은가. 그리고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김연수 작가의 「우리들의 실패」가 정치와 사회적 사건 이후에 남겨진 인간의 삶을 탐구한다면,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결정적 순간」은 예술과 진실 사이에서 갈라지는 개인의 선택을 다룬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해 수렴한다.
1. 우리들의 실패 - 개인의 실패인가, 시대의 실패인가
사람의 삶에서 ‘실패’는 보통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어떤 실패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의 단편 「우리들의 실패」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손동하는 대통령 탄핵 이후 벌어진 정치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이다. 설정만 보면 정치 르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의 관심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작가가 탐색하는 것은 실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과 기억의 방식이다.
소설은 기자가 손동하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뷰라는 방식은 겉보기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인터뷰는 오히려 진실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손동하는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고 기자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어디까지 자기 합리화인지 독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 애매함이 바로 이 소설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손동하가 말하는 ‘실패’는 단순히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는 마땅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손동하는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고 믿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감정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존재할 때 우리는 그를 쉽게 비난하거나 옹호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인식이 하나 있다. 세상은 인간의 희망이나 후회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짚으로 만든 개일 뿐입니다. 잠시 존재하다가 그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지요.” (49쪽)
이 문장은 인간의 삶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선택의 책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제목이다.
왜 ‘나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들의 실패’일까.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결국 하나의 현실 속에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사람의 생존은 또 다른 사람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는 한, 살아남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죽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겠죠.” (72쪽)
이 문장은 소설의 핵심을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 연결 속에서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실패를 완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실패의 원인을 밝히기보다 실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바라본다. 과거의 선택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은 계속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들의 실패」는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 결정적 순간 - 사진이 포착하는 윤리적 딜레마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사진에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찰나의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 순간은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진실의 발견을 의미한다.
주인공 미즈마키 가스미는 큐레이터다. 그녀의 오랜 꿈은 거장 사진작가 사카키 미노루의 전시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유고전을 준비하던 어느 날, 그녀는 그의 작업실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사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인다.
'진실을 밝히고 전시를 무너뜨릴 것인가' 아니면 '비밀을 덮고 예술적 업적을 지킬 것인가'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이 이야기 전체를 압도한다.
가스미가 처음 사진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생리적 혐오감이었다. 이후 그녀는 그 감정이 윤리적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 되묻는다. 이 장면은 인간의 심리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먼저 감정을 느끼고, 나중에 그 감정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다.
가스미의 고민은 더 복잡하다. 그녀는 예술을 깊이 사랑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평생 존경해 온 예술가의 명성과 그 작품 뒤에 숨겨진 가능성 사이에서 그녀는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일기, 기사, SNS 기록 등 다양한 형식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구성한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단일한 진실이라는 개념은 점점 흔들린다. 독자는 어느 이야기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다. 결국 작가는 독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소설에는 예술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예술가의 인격과 작품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태도 역시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쪽도 완전히 편안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외면할 것인가. 그 선택의 무게를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준다.
3. 두 소설이 남긴 질문
「우리들의 실패」가 정치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공동체의 실패를 다룬다면, 「결정적 순간」은 예술과 진실 사이에서 갈라지는 개인의 선택을 보여준다.
주제도 배경도 다르지만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옳은가, 그리고 우리는 그 옳음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근접한 세계』는 분명한 결론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 불편한 질문을 건넨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의도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패를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실패가 사실은 우리가 속한 세계 전체의 실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전처럼 편안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마도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우리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