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작가의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을 한데 모은 작품집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보여준 과학적 설정 위에 인간 존재와 감각을 탐구하는 김초엽 특유의 문장이 어김없이 빛난다. 각 편마다 질문과 여운이 달라 “존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는가”라는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비춰본다.
(1)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미래 사회,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현이는 회사 갈등으로 연구원을 그만두고 ‘솜솜 피부관리숍’에서 일한다. 그곳을 찾아온 안드로이드 수브다니는 “잘 녹슬고 싶다”는 이유로 금속 피부 이식을 요청한다.
과거 그는 인간 예술가 남상아와 함께 예술적 실험을 했으나 관계가 틀어졌다. 이제는 인간으로서의 흔적을 금속 피부 위에 새긴 채 스스로 녹슬어 사라지길 택한다.
타인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라지려는 선택, 존재의 자기결정권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2) 양면의 조개껍데기
표제작이자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외계 행성 ‘셀븐’ 출신의 샐리는 두 개의 자아, 레몬과 라임을 한 몸에 지닌 채 지구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연인 류경아는 이 두 자아를 모두 사랑하지만, 레몬의 충동적 행동으로 갈등이 깊어진다.
샐리는 자아 분리 시술을 고민하지만 결국 레몬과 라임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화해에 이른다. 우리 역시 하루에도 수많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우고 화해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깊은 공감을 남긴다.
(3) 진동새와 손편지
알파 C 서브섹터의 조난 우주선에서 집단 네트워크 지성체인 화자는 이곳에서 ‘진동새’라 이름 붙인 미지의 생물을 발견한다. 진동새는 몸을 떨며 고유한 패턴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데, 그 패턴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감각과 감정까지 품는다.
화자는 인간의 언어가 지닌 한계를 돌아보며, 결국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지금 당신을 만나러 와야 했어요” (131쪽)라는 단 한 줄의 마음을 위해 수많은 진동이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소통의 본질을 묻는, 낯설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4) 소금물 주파수
울산 해역을 배경으로, 기억을 잃은 로봇 돌고래 해몽과 과학자 임영선, 손녀 모아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바다의 소리와 주파수, 인간과 로봇,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한 번은 돌아와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해몽과 모아의 여정은 귀향과 성장을 상징한다. 태화강 복원과 철새 귀환 같은 실제 도시 변화가 서사에 스며 있어 더욱 생생하다.
(5) 고요와 소란
어느 날 전 세계 사물과 동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그러나 북극에서 소리를 채집하던 연구자 서해겸은 유일하게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수십 년이 지난 뒤 화자 서영은 해겸을 찾아가 “사물의 목소리”에 대해 묻는다.
물건과 생명에 깃든 영혼, 인간이 도구가 되어 그것을 기록한다는 해겸의 가설은 세계가 가진 보이지 않는 층위를 떠올리게 한다. 다소 난해하지만, 읽고 나면 사물과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6) 달고 미지근한 슬픔
인류가 물리적 몸을 버리고 데이터 세계로 이주한 시대를 배경으로 양봉가 백단하는 벌을 기르며 “살아 있다는 느낌”을 찾고, 연구자 이규은과 함께 존재의 의미를 탐색한다.
가상 공간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고통과 쾌락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양자 큐비트 결정이 곧 ‘우리의 신체’라는 설정은 과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며, 살아 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7) 비구름을 따라서
룸메이트 최이연의 추도식 초대장을 받은 보민이 미스터리한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각기 다른 날짜와 장소가 적힌 초대장, 그리고 이연이 즐기던 보드게임 ‘노바 파우치’는 현실과 평행 우주를 잇는 단서가 된다. 이연은 ‘반투막 너머의 세계’를 찾아 비구름을 따라간 것일까.
삼투 현상을 은유로 한 결말은 경계와 이동, 선택의 자유를 상징한다.
(8) 일곱 편의 단편들
일곱 편 모두 장르와 결이 다르지만, “존재와 선택”이라는 굵은 축으로 묶인다. 안드로이드, 다중 자아, 진동으로 소통하는 생명체, 데이터화된 인류 등배경은 미래와 우주를 넘나들지만,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지금 여기의 우리를 향한다.
개인적으로는 ‘비구름을 따라서’의 물리 현상 삼투를 서사로 풀어낸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루 한 편씩 천천히 곱씹어 읽으면 더 좋겠지만, 나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는 『양면의 조개껍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