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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esa님의 서재
  • 밤새들의 도시
  • 김주혜
  • 17,820원 (10%990)
  • 2025-06-13
  • : 14,439

김주혜 작가의 소설 『밤새들의 도시』는 러시아 발레의 정통 무대를 무대로, 예술가의 빛과 그림자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발레리나의 삶을 한 편의 고전 발레처럼 1막, 2막, 3막, 코다, 커튼콜로 나누어 서술하는 독특한 형식은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고전 발레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구성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무대 위의 박동과 긴장감이 생생히 전해진다.


주인공 나탈리아 레오노바는 어린 시절 가난한 미혼모 밑에서 자랐다. 우연히 이웃집 아이의 춤을 따라 하다 발레의 재능을 인정받아, 러시아 최고 등용문인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늘 과소평가를 받으며 실력을 증명해야 했던 나탈리아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고백하며 치열한 경쟁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한다.


훈련과 무대에서 만난 친구 니나 베레지나, 훗날 파트너가 되는 알렉산드르 니쿨린,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디렉터 드미트리 오스트립스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고독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한다. 이 고독이야말로 나탈리아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이다.


2막에서는 세계적인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해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길이 그려진다. 국제 콩쿠르 1위, 압도적인 실력, 그리고 무대 위의 찬란한 박수갈채. 그러나 절정에서 나탈리아가 느낀 것은 예상치 못한 공허함이다. 이를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온몸을 다 바쳐 목표를 이루어낼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그토록 원하던 걸 손에 넣자마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186쪽)


이는 꿈을 이룬 후 찾아오는 허무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시기 그녀를 둘러싼 갈등도 치열하다. 동료이자 정치적 야심가 드미트리는 그녀의 성공을 견제하며, 예술과 권력의 미묘한 긴장을 보여준다. 나탈리아는 결국 더 큰 무대를 향해 파리로 향하지만, 불안과 압박은 더욱 깊어진다.


3막의 무대는 파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우아함, 모스크바의 감동과 달리 파리는 ‘유혹하는 도시’로 묘사된다. 최고의 무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녀는 스스로를 위협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발에 피로 골절이 생기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녀의 경력은 한순간에 끊어진다.


나탈리아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바닥은 그보다 훨씬 더 깊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참석할 수 없었던 그녀는 “밑바닥을 이미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지금 떨어진 밑바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고백으로 절망의 심연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일으킨 것도 결국 발레였다. 무대는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이자, 동시에 살아갈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 속 ‘밤새(Night Bird)’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지만, 무대 밖에서는 외로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상징한다. 실제로 극 중 드미트리가 도시를 떠나며 '밤새와 몽상가의 도시'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이 단어가 지닌 상징성을 더욱 깊게 만든다. 화려한 조명 아래 춤추는 나탈리아야말로 가장 찬란한 ‘밤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만큼 다양한 러시아식 이름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감사의 말’에서 이름의 구조와 호칭을 친절하게 설명해 독자의 혼란을 덜어준다. 무대와 연습실, 공연장의 공기, 땀 냄새와 음악까지 세밀히 묘사해, 독자는 마치 객석에서 그녀의 춤을 바라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낀다.


작가는 『밤새들의 도시』의 마지막에 나탈리아가 “자신의 날개로 날아오르다(Alis volat propriis)”라는 문구와 함께 새롭게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화려함과 추락, 절망과 부활을 모두 겪은 뒤 비로소 얻는 자유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날갯짓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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