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멀게만 느낀다. 나 역시 그렇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보려 하면 금세 포기하곤 했다. 논어나 도덕경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읽다 보면 문장이 널을 뛰고 결국은 책장을 덮으며 철학의 어려움을 다시금 느끼곤 한다. 이런 나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철학의 정원』이 철학의 문턱을 조금 낮춰줄 것 같다.
이 책은 철학을 거대한 숲이나 산이 아니라, 산책할 수 있는 정원으로 안내한다. 100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주요 저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삶과 인간, 세계와 종교 같은 주제로 나누어 배열했다. 덕분에 읽는 사람은 마치 정원 길을 따라 걷듯, 다양한 사상과 철학자들을 차분히 만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정말 ‘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난이도 설정’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수학 원리』를 최고 난이도 10으로 정하고, 다른 철학서들을 그 기준에 맞춰 소개한다. 예를 들어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난이도 9, 노자의 『도덕경』은 난이도 2로 매겨져 있다. 개인적으로 도덕경이 결코 쉬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다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드러난다. 저자는 난이도를 ‘정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도록 자극한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는 철학책을 단순한 난해한 텍스트가 아니라 스스로 탐험할 수 있는 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동양 철학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다. 노자, 공자, 장자 외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일본 학자인 구키 슈조 정도가 예외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는 저자의 한계라기보다 철학사 자체가 서양 중심으로 정리되어 온 현실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스피노자나 데카르트는 익숙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자나 실학자는 이름만 겨우 들어본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그런 공백을 새삼 느끼게 된 것도 하나의 의미였다.
『철학의 정원』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철학이나 사상에 흥미를 지닌 사람을 위한 안내서”이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름만 들어본 철학자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안내자가 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철학은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소개한다. 죽음 앞에서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이 질문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자일 수 있다. 『철학의 정원』은 그런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작은 문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