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치유의 빛’은 힐러 직업을 가진 성직자가 신성력을 소모하는 일종의 마법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이것이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을 읽게 된 동기다. 사실 강화길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라 살짝 페이지를 훑었는데 검은 바탕의 한 문장만이 써진 페이지가 눈에 띄었다. 소설 속의 한 대목이긴 하나 그 페이지를 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박지수는 어릴 적부터 존재감이 거의 없었지만, 열다섯 살 가을 급격히 체격이 커지면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옭죄는 굴레가 된다, 지수는 타인의 시선과 따가운 말들에 큰 상처를 입으며 스스로를 점점 더 가두게 만든다. 그렇게 소외되고 위축되었던 시절, 지수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동경하던 친구 ‘해리아’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다. 그렇게 그룹의 원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수영장에서 해리야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것이 지수에게 더 큰 트라우마로 남아, 고향 안진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성인이 된 지수는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으며 병적으로 몸무게와 식사에 집착한 삶을 살아간다. 176cm, 50kg을 유지하기 위해 식욕억제제까지 복용하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지수는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숨이 턱 막히는 날개뼈 아래의 통증인 원인불명의 신경성 근육통 반복되고 주변의 권유도 잦아져, 결국 고향인 안진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안진에서 지수는 과거 학창 시절의 친구 해리아, 그리고 해리아와 가까웠던 이신아의 소식을 듣는다.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채수회관은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낯선 공간으로, 다양한 통증을 지닌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 곳이다. 지수는 해리아와 신아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채수회관에서 수련을 하기로 한다. 그곳에서 지수는 오래도록 억눌린 고통과 기억을 마주하며,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지수는 재생 수련이라는 명목 아래, 각자가 가진 고통의 '최초의 기억'을 되짚도록 강요받는다. 마치 소설 초반 지수의 동네에서 사기를 쳐 도망을 간 조칠현 목사와 같은 사이비의 느낌도 나지만 지수는 이 과정에서 관리자들과 부딪히며 마지막까지 분투한다. 이윽고 지수는 자신의 오랜 트라우마의 실체를 직면하고 치유의 빛을 체험하게 된다.
주인공 지수의 몸은 여성이 몸이 사회적으로 감옥이 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 인물들에게도 이러한 잣대가 적용이 된다. 따라서 이들 인물 간의 관계는 동경, 질투, 애증, 소유욕 같은 감정이 여성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유발한다. 게다가 인물들은 가족, 학교, 지방 소도시, 종교 단체 같은 폐쇄적 공동체 속에서 억압받는 존재로 묘사되어 ‘한국형 여성고딕소설’이 되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심리적 갈등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등장인물의 개별적 배경보다는 그들의 관계성과 상징적 역할이 더 강조되어 등장인물을 파악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또한 언급한 주요 등장인물 외 소설 초반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해리아의 라이벌인 안지연과 체육교사 김이영이 후반으로 갈수록 뚜렷한 서사적 비중을 잃고 사라져 아쉽기도 했다. 또한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힐라리아와 안티오페’의 설화의 상징성이 나에겐 난해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