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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esa님의 서재
  •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이호
  • 16,650원 (10%920)
  • 2024-12-23
  • : 15,526

지금도 이해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배울 때 가장 고생했던 개념 중 하나는 물리학의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서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자연계의 모든 변화는 무질서(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흔히 열역학 제2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현실적인 생활에서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립계의 무질서인 엔트로피는 그 값이 커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값이 클수록 무질서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든 상태이다. 여기에 억지를 조금 보태 엔트로피를 생명체에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인 것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도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으러 준비 중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먼저 읽은 우연이기도 하다. 다양한 직업군 가운데 죽음을 가장 많이 본 직업을 가진 법의학자이기에 저자가 본 죽음은 막연히 느끼고 있던 죽음과는 조금 달랐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법의학자가 부검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억울한 죽음을 대신 변론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산 자에게 행동과 책임을 일깨우는 1부 ‘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와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제2부 ‘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그리고 개인과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사랑과 연대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품은 제3부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언급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약 20여 만 명이다. 그중 사망원인의 1위는 암이고 2위인 약 2만 8천명은 ‘사인 불명’이라고 한다.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시 절차를 진행해야 함에도 아무도 원인을 밝히려 하지 않고 밝힐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해 검시 없이 사망 등록이 되고 있는 이들의 숫자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중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인 불명으로 처리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억울하게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음을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저자와 같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도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의 ‘들어가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법의학자로서의 세월은 죽음보다 주검을 마주해온 시간이었다. 주검을 마주하기 전 고인의 삶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먼저 검토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느낀 단상들을 글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죽음, 반드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간 죽음,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 남은 사람들의 자책감을 덜어주어야 하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9쪽)


이어 다양한 죽음과 그에 따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아직까지 충격으로 남아 있는 다양한 대형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비극으로 남은 대형 참사를 빠짐없이 경험한 그이기에 이런 당부가 더 다가왔다.


안타깝게 사고의 희생자가 된 분들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사고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142쪽)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 때문인지 회귀와 관련된 웹소설과 웹툰이 많이 등장하고 소비된다. 회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대로 말 그대로 리셋에 가깝다. 이를 차용한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대게 능력과 환경은 초기화가 되지만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와 달리 현실의 삶은 회귀와는 크게 다르다. 리셋보다는 덮어씌움에 가깝다. 오늘의 실수를 사과와 후속조치로 메꿔가는 것이 현실의 삶과 가까운 셈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좋아한다.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잘못 들어섰습니다. 다시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겠습니다.” (214쪽)


어쩌면 새로운 경로도 잘못된 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잘못 들어선 길을 자양분 삼아 다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임을 다양한 죽음을 접한 저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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