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Ganesa님의 서재
  •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 15,120원 (10%840)
  • 2025-04-06
  • : 241,535

“때로 어떤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출판된 김영하 작가의 산문이라는 점과 띠지의 저 문구를 보고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란 말은 미스터리 소설의 신간에서 종종 등장하는 광고성 문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 멋진 글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을... 아무튼 지금은 단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글이라는 점이 강한 호기심이 드는 것을 사실이다.


에세이로 출판된 책은 종종 읽었으나 산문은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이후 처음 읽는 것이라 문득 산문과 에세이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검색의 필수가 되어버린 AI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을 준다.


산문과 에세이는 둘 다 운율이나 정형화된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산문(散文, Prose)은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모든 글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고 에세이(Essay)는 산문 형식의 글 중에서도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 경험 등을 자유롭게 표현한 글을 의미한다. 즉 산문의 한 종류가 에세이라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산문 『단 한 번의 삶』의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많은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다. 일단 적어놓으면 그 안에서 눈이 밝은 이들은 무엇이든 찾아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써나갔다. (197쪽)


있는 그대로 삶에 대해 적을 때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글은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가장 진하게 베여있는 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단 한 번의 삶』의 시작에는 ‘이 세상으로 나를 초대하고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난 두 분에게’라는 일종의 헌정사에 가까운 글이 있다. 바로 작가의 부모님이다. 그리고 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작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작가가 된 뒤 겪은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에서도 느낀 점인데 『단 한 번의 삶』을 읽다보면 작가가 쓴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험담과 그에 따른 생각에 대한 글이기에 어쩌면 일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OO을 했다. 재미있었다.’가 대부분인 나의 일기와 비교하면 깊은 곳에서부터 찌릿하고 공명하게 만드는 글이 많이 있다는 점이 있어 타인의 일기 같은 글이지만 읽게 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글은 테세우스의 배’에 있었다.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72쪽)


김영하 작가는 작가 소개에도 언급이 되지만 여행, 요리, 그림그리기, 정원 일을 좋아하는데 전문가 수준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런 십 년이 여럿 쌓였다고 했으니 전문가 수준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다 나는 매년 12월 말에 계획을 세우지만 3년, 5년, 그리고 10년의 계획을 세운적은 있었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당연히 없다. 매년 한 해 계획도 다 실천하지 못하는데 장기계획은 무슨... 그렇기에 이것은 내가 잘못한 것보다 그 계획을 완수하기에 시간이 짧았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글이었다.


인상 깊었던 글과 다르게 가장 좋았던 글은 작가가 중학생 때 친구를 부러워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이탈’이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이다.


중학교 때 친구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LP를 들고 있었다. 형이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게 가능하려면 일단 형이 있어야 하고, 형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을 알아야 하고, 동생에게 그 음반을 사주면 동생이 기뻐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하고, 평소 가족끼리 저런 것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집에 그 음반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중 단 한 가지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참 부러웠다, (126쪽)


그 친구가 부러운 이유가 논리정연하게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수많은 이유 중 단 한 가지도 가지지 못해서 친구가 부러웠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이 재미있게도 나는 부러웠다. 게다가 작가는 종교가 필요한 이유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9쪽)


김영하 작가의 책은 소설만 읽었고 『단 한 번의 삶』이전의 산문이라는 『여행의 이유』를 읽지 않아 나에게는 작가의 첫 산문이었는데 삶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많이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오른쪽 정렬이 되지 않은 문장들이 책을 읽을 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작된 삶이 어떻게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점에서 이 또한 삶을 닮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제목에 어울려 보였다.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 길지 않은 글이 담겨 있지만 그 내용은 아담하지만은 않은 『단 한 번의 삶』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