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정상인처럼 살아보겠다고 운동을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코너에 하나씩 생겨버린 필라테스 센터.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던 친구들도 왠지 저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유행처럼 등록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그렇게 많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열심히 다녔는데 오히려 몸을 다치거나 금방 포기하는 지인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 포함.
원래부터 허약했고 운동을 싫어헀다는 김현경 저자(공저)와는 달리, 난 원래도 운동을 좋아했다. 애기 때부터 수영, 탁구, 합기도, 스키, 발레, 골프를 배웠고 기간은 짧아도 언제나 운동 하나씩은 하고 있었다. 선생들이 뻑하면 자습을 시키던 중고등학생 때도 (이런 관습 정말 문제다. )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피구를 하거나 탁구, 배드민턴을 줄곧 치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을 쉰 적은 거의 없었다. 수능 이후 바로 헬스장에 등록했고, 대학에 와서도 홀로 자취를 하며 복싱, 스쿼시, 폴댄스, 필라테스, 웨이트 트레이닝 등 그때그때 끌리는 운동을 시도했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는 지라 체지방은 오락가락 했지만 내가 알기론 골격근량이 크게 떨어진 적은 딱히 없었다. 타고난 체력도 어느정도 있었고 겉보기에도 문제가 없어서, 난 나름 '관리된' 상태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곤 했다.
하지만....... 꽤 괜찮은 몸을 가졌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어느날, 갑자기 팔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문제의 조짐은 많았다. 옛날부터 만성 비염으로 호흡기 질환이 있던 나는 초1 때 수영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중이염을 앓았고,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시끄럽다보니 걸핏하면 호흡을 참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걸음은 언제나 8자였고, 어깨(승모)를 위로 들어올리는 습관도 있었다. 공부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고 첼로를 켤 때도 항상 그랬다. 합기도를 배우던 중 잘못된 낙법으로 쇄골이 금이가면서 가방을 한쪽으로만 메는 습관도 생겼다. 그 습관은 학부 때까지 계속되었다.
갑자기 굳은 팔에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던 그때는, 논문 프로포절 준비로 찐 살을 빼려고 웨이트 트레이닝과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던 시기였다.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등이 찌르르하더니 필기하던 팔이 뚝 멈추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나는 학교에서 나와 급히 근처 정형외과로 향했다. 진단은 간단했다. 거북목.
내 몸이 이렇게 예쁘고 운동이 이렇게 재밌는데.... 병자라니!!!!!
혈기왕성한 20대 중반 청년이 그 이후 뭘 했을까? 운동을 더 더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유연해지겠다고 폴댄스를 등록했고, 몸을 교정해보겠다고 그룹 필라테스도 끊었다. 하지만 내 몸은 고장을 멈추지 않았다. 타고난 유연성이 마이너스인 나는 폴 위에서 힘으로 버티다가 햄스트링을 다쳤고,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또 같은 곳을 다쳤다. 근수축이 심한 상태로 억지로 동작을 따라가려다 보니 다리에 무리가 간 것이었다.
내가 통증과 잦은 부상의 원인을 알게된 건 한참 후였다. 우연한 계기로 재활 전문으로 피티 담당 선생님이 변경되면서 나는 깨달았다. 문제는 등이나 목이 아니라, 바로 발과 호흡이었다.
내쉴 때 내쉬지 않고, 복압을 꽉 채우지 못하는 호흡. 대충 뭉개며 지내온 유연성. 아치가 와장창 무너진 발. 10대 때부터 운동화처럼 신어왔던 하이힐이 변형시킨 발가락 형태, 백 니, 유전적 질환 등등이 복합적으로 문제를 구성했다. 20년 넘게 축적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치를 재건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는 연습은 나를 운동 생초보로 다시 돌려놓았다. 반동을 써가면서 훅훅 들던 무게도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진짜 몸의 기능이란, 바르게 쌓아갔을 때 비로소 나아진다는 사실을.
헬스를 10년 했지만 제대로 스쿼트 자세가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어깨도 펴졌고, 적절한 호흡을 함께하니 가동범위가 넓어져 하나씩 동작의 수행이 가능해졌다. 난 게으른 학생이라 여전히 스트레칭도 게을리하고 평소 생활습관도 개판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꾸준히 노력을 해온 결과다.
드디어 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책은 내 오랜 기간에 걸친 삽질을 무화하는 책이다.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 혹은 한번이라도 운동으로 인해 몸이 망가져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목차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유익한지 짐작할 수 있다. 모두 중요하단 걸 알지만 쉽게 경시하는 정렬과 호흡부터 가르쳐주니까.
솔직히 처음엔 표지가 끌리지 않아서 괜찮을까 싶었다. 세련된 커버가 넘쳐나는 세상에 너무 2000년대 초반에 나왔을 법한 디자인이라 내용이 과연 좋을까? 그냥 짜치는 책 중 하나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구체적인 운동 동작은 차치하고라도, 이 책의 진짜 진가는 앞부분만 읽어봐도 알 수 있었다. 기본과 순서를 중시하는 태도. 조급하더라도 핵심을 바라보기를 권유하는 저자의 시선이 전개 내내 끈질기게 강조된다. 말로는 쉽지만, 이토록 바르고 강한 가치관을 (당장 돈 버는 걸 희생해서까지) 실제 삶에서 반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구구절절 길어졌는데 ㅎㅎㅎ 요지는... 운동은 아무 지식 없이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앉아서 스마트폰을 굴리는 현대인이고, 단순히 운동을 많이 하거나 즐긴다고 해결되지 않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몸 안에 존재한다. ~SNS에 보이는 아무개의 몸~이 아니라 '나의 몸'을 제대로 진단받고, 그에 맞춰 솔루션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나는 운이 좋게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선생님을 만나 열정 넘치는 지도를 받고 있지만! 그 전까지 수많은 다른 삽질을 거쳤다. 우리 육체는 유한하고, 갈면 갈리는 대로 소모된다. 그러니 제발 제대로 투자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 책의 진가를 알아주길 바란다. 기회가 된다면 김월영 원장님께 진단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