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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독서, 그리고 만남
  • 일베의 사상
  • 박가분
  • 11,700원 (10%650)
  • 2013-10-30
  • : 485


단지 잉여로운 글만 올라오는 곳, 또는 극우라고 불리는 일베에도 그 속에 가려진 진짜 배경, 또는 생각을 살펴보려는 책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모두는 우스운 인간일 뿐이다.”라거나, 

“그들은 과거의 우익과 달리 인터넷 밖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라고하며 그들의 특징을 점검하고,


“너도 비하의 대상이며, 나도 비하의 대상이다.”는 평등한 혐오 문화를 일베의 핵심으로 제시한 저자는 일베 이전에도 해당 문화가 있었음을 설명하는 한편, 일베는 이를 집단적으로 이를 향유하기에 새로우며, 한편으로는 민주적이라고 평한다.


144쪽에서 일베가 팩트 중심의 담론을 펼치며 회의론으로 유도해 행동을 차단한다는 분석 역시 날카롭다. 일배의 사상이 몰이상의 사상이란 표현도 적절하다. 


(물론 난 팩트가 잘못 된 것이 아니라면 팩트 중심의 담론이 더 나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 


그러나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나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149쪽)

등의 표현은 비겁한 양비론자에 가까운 내 입장에서는 진보를 너무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진보가 같은 이상을 공유하느라 모두가 평등하게 현실을 외면하는 반면, 보수는 모두가 평등하게 이상을 짓밟는, 다시 말하면, 서로 똑같은 부류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책의 주제가 일베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그 대척점인 진보에 대한 표현이 아무래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92쪽에서 인용한 엉덩국의 만화에 있는 “정말 훌륭한 병신이야”는 표현을 ‘칭찬’으로 인식하는 등 저자가 해당 틀에 너무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듯 보이는 면도 없지 않다. 

("정말 훌륭한 병X이야."는 표현은 아무리 봐도 대놓고 조롱하는 거지, 칭찬이 아니다.)


저자는 인터넷이 과연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다루면서 “정책 심의 과정은 전문가와 정치인이 진행하되, 이를 생중계하고, 일시간 채팅 등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토론의 제약조건으로 삼는 대안.” 을 소개하는데, 현제 보다 발전된 방식으로 보이며, 의미 있는 이야기이겠으나,

일단 인터넷 사용 가능 계층의 여론이 과대 반영 될 우려가 있으며, 결국은 인기 영합 정책이 더 많아지거나,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의견처럼 토론의 제약조건으로 삼기보다, 

토론 영상에 함께 제시하는 정도로 제한하여, 논의에 참고 사항, 또는 후속 연구나 협의에 참고 자료가 되도록 하는 수준으로 정하는 게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일베를 극복하기 위해,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을 인용하는데

1) 인터넷 안에서 승부를 보려는 행위의 한계를 인정하며 (설득 불가), 이를 인터넷 밖의 공론장으로 가져올 것과,

2) 공론장을 거치지 않은 사상도 인정할 것. 그리고

3) 어떤 사상이든 집단적 정념을 우회할 수 없기에 타인의 정념을 없애려하거나, 이를 인정하고 동화되러하기보다, 이 타인의 정념을 사물처럼 인정할 것을 말한다.


물론 저자는 이 이론의 한계점 역시 지적하며, 히로키의 논의 속에서 공론장은 ‘자발적인 공론장’이 아니라, 공적으로 ‘기획된 공론장’이라 밝힌다. 그러나 난 여기서도

그 공론장이 델파이 기법보다 나은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반인의 목소리들을 조금이나마 더 담을 수 있다.”

그 이상의 이점은?


이에 대한 설명은 이후 216쪽에서 볼 볼 수 있었다.

요컨대 시민사회의 총의를 단번에 구현하는 거대한 국가적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이성으로 처리될 수 없는 국민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관료들의 논의에만 의존할 때 국가는 이러한 감정을 무시하고 폭주될 수 있다. (216쪽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

결론적으로 결국 일베의 사상은 촛불시위에 드러난 사상이 굴절되고, 그 실패에 실망하여,상처 입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적극적으로 외부의 이상에 대한 거부와 조롱으로 드러난 것이기에, 그들의 보수성은 기존 보수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그 대처도 달라야 하리라.


 저자는 그 해결로

“지난 날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중략) 현실의 국가에게 불가능한 이상이나 도덕성을 국가와 정치인에게 기대하거나 설교하는 상상력 대신 일상 속의 타인들에게 먼저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공유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략)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상을 유기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없이 이상을 국가에 의해 곧바로 실현시키려는 기획에 그동안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241쪽)


시민들이 국가를 향해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관철 가능한 집단들을 구성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종종 무한한 대중의 한 원자가 되거나 무한한 대중을 이끄는 상상적 카리스마(상상적 국가)를 원하게 된다. 

(252쪽)


결국 저자의 주장은 “국가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구체적 기획과 의제를 갖춘 개인이나 개별 단체가 활성화 되고, 이를통해 자신만의 이상을 작게나마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일베를 극복할 수 있다.” 정도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사실 결론 부분이 가장 아쉬웠는데, 계몽운동처럼 살짝 기운 빠지는 결론일 수 있다. 

방향성 제시에 공감하며, 여러 관점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나, 결국은 ‘교육 + 결단’이란 너무나 당연하고 어려운 결론이다.



그래도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리라.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나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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