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나를 옹호하는 글쓰기
취향의시대 2020/02/01 00:34
취향의시대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홍승은
- 12,600원 (10%↓
700) - 2020-01-30
: 2,718
당신이글을쓰면좋겠습니다
어릴 땐 글짓기 수업 시간을 좋아했다. 대학교 졸업 무렵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잡지사 피쳐팀 에디터를 꿈꿨다. 기업 홍보팀에선 보도 자료와 사내 뉴스레터를 썼다. 지금은 교육 자료 스크립트를 쓴다. 하루에 10시간씩 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은 쉬이 사그라 들지 않았다. 절박하진 않지만 정체 모를 허기와 갈증은 계속 되었다.
.
그것의 정체는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를 읽으면서 내 안에서 있는 힘껏 부풀어 올랐다가 펑 하고 정체를 드러냈다. 오랜 시간 내 안엔 말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쌓여있었다. 이걸 글로 내놓으려면 내가 무엇을 잊고 싶은지, 무엇을 감추고 싶은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들여다 봐야 하는데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 되는 것 같아 도통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방치되어 있었다.
.
하지만 작가는 책에서 그렇기 때문에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존재니까. 저자가 인용한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인간은 슬픔을 통해서 타자와 근원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을 느낀다고 한다.
.
나는 최근 몇 년간 타인의 감정 특히 슬픔에는 무신경한 이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무신경하다 못해 그걸 외면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내가 타인에게 갖는 대부분의 감정을 유약한 것으로 치부하곤 했다.
.
‘돈 없는 데 화목하게 사는 가족이 제일 최악인 거 같아.’ ‘우울증 같은 게 걸리는 사람도 있나 봐요?’ ‘뭐니 뭐니 해도 돈 맛이 최고지.’ 돈, 외모로 몇 초 만에 타인을 난도질하는 그들에게 사람은 다 다르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거라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하고 판단할 권리는 없는 거라고 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
그 틈에서 조용히 시들어가던 내게 이 책은 큰 위로고 응원이 되었다. 여전히, 타인의 슬픔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려는 이들이 있구나, 누군가를 풍경의 배경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시선은 선물 같은 재능이구나, 단어 하나에도 상처받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하는 태도는 필요한 게 맞구나, 가만히 잊히는 존재에 말을 걸어보는 용기는 쓸모 없는 게 아니구나. 나 괜찮은 거구나. 이상한 게 아니구나.
.
작년 여름, 살아온 시간에 대한 질문의 답을 적는 <마더북>의 사전 참여자로 엄마가 글을 쓴 적 있다.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답변이 너무 매력적이라 편집부에서 엄마 팬이 되었다고 전해달래” 하고 담당자의 말을 전했더니 “어머, 정말? 별거 안 썼는데도 괜찮았다니?” 라며 정말 그렇게 말하더냐며 눈을 빛내던 엄마를 보았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오롯한 존재로 그녀를 마주하게 된 낯설지만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
그래서인지 작가와 엄마와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던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흘렀다. 엄마에게 <자기만의 방> 이란 이었던 걸까.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작년의 목표는 올해의 목표로 이어가려고 한다.
.
이 책은, 여전히 이런 나라도 글을 써도 괜찮다고 말한다. 내가 느낀 허기와 갈증은 당연한 거였다고. 작가의 말처럼 ‘쉽게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타인의 존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글을 통해 내 존재도 옹호할 수 있다’고 나를 응원한다. 이제 나와 마주하고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이유는 꽤나 충분한 것 같다. 주변에 널리 널리 알리고 싶은 미지근한 위로.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