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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yonder
  • The Beginning of Infinity: Exp...
  • David Deutsch
  • 32,690원 (18%1,640)
  • 2012-05-29
  • : 93

진보progress란 이해의 범위가 넓어지거나 새로운 이해를 얻는 것이며 창의성과 자유로운 비판이 핵심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기반에는 이성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책의 제목은 이러한 이해를 통한 지식의 창조가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저자의 믿음을 나타낸다. 저자가 말하듯 이는 완전한 낙관주의이다. 납득이 되는 주장도 많았지만—예컨대 경험주의 비판과 과학 이론의 임시성—저자의 끝없는 낙관주의적 믿음과 이성에 대한 전폭적 신뢰에 100퍼센트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그는 이러한 태도를 비관주의라고 비판할 것이다.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그는 정말 이성주의를 지나칠 만큼 끝까지 밀고 간다. 이성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또는 이성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면 비이성주의자가 되는 것인가? 저자와 달리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보 또는 좁게 말해서 과학의 발전이 끝이 없으리라는 저자의 주장도 희망일 뿐이다. 근원물리학 분야만 해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언젠가는 해결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20세기 초와 같은 거대한 전환이 또 올지 확신할 수는 없다. 


저자는 지속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진보의 억제가 아니라 진보 자체가 바로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란 늘 새로운 문제의 발생을 야기하며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끝없이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저자가 얘기하는 ‘무한의 시작’의 모습이다. 저자에게는 세상에 대한 모든 이해가 ‘선’이다. 지구나 우주의 물리적 한계는 저자에게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금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발전 속도를 억제해서 문제를 늦추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발전은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부를 계속 쌓아서 새로운 지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구가 망가지는 속도를 새로운 지식이 감당할 수 없다면? 많은 기후학자들이 걱정하듯 어느 순간 이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면? 


저자는 인간의 욕심이나 감정과 같은 측면에는 놀랄 만큼 무심하다. 그에게 인간의 의미란 보편적 지식의 창조자 외에는 없는 듯싶다. 그의 주장을 좀 더 곱씹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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