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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신한 숲
셰익스피어! 이름의 첫 글자만 들어도 우리는 자동적으로 세계 최고의 문호라는 수식어가 떠오른다. 학창 시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모르면 그 사람의 교양을 의심했으며 로미오와 쥴리엣을 유치원 때 따로 읽었다는 농담 속에서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동경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구어체와는 거리가 먼 시적인 대사와 연극적인 설정,(당대 희곡이기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얽히고 설킨 인물 구조로 (사실 매우 간단한 것이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서사가 주는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을 읽는데 그 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던 것이다.

어린이들이 읽는 셰익스피어는 어떨까? 물론 그 대사들은 아이들이 읽기 쉽게 생략되었고, 지문 역시 '~했어요. ~했습니다'로 바뀌었다. 게다가 <한 여름밤의 꿈>에는 당나귀머리로 변했던 보텀이 티시어스의 결혼식에서 연기하는 그 유명한 연극 '피라무스의 티스비' 부분이 뭉텅 잘려나가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화책에는 셰익스피어 원전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헬레나의 디미트리어스를 향한 열정적인 고백, 보텀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허미아와 라이샌더의 지고지순한 사랑(퍼크의 장난으로 잠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요정 여왕 타이테니아와 요정의 왕 오베론의 부부싸움까지 분명히 아이들이 읽기 쉽게 다시 썼음에도 불구하고 대사와 상황의 재미가 그대로 전해지다니...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 비밀은 어휘들에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명문장들에서 중심이 되는 단어들이 속속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 책이 영문으로 씌여진 후 다시 번역된 것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상상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해낸 그림도 한몫을 하고 있다. (퍼크의 장난기 어린 표정과 보텀의 우스꽝스런 연기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아마 커서 다시 셰익스피어를 읽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나보다 더 즐겁게 셰익스피어를 추억하게 되겠지. 내가 이 동화책을 읽고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느꼈던 당혹감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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