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피에르의 아내였다
이리스는 언제나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온 ‘착한 여자’다.
10대에는 보수적인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고,
일찍 결혼한 후에는 남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커다란 집, 번듯한 직장, 유능한 의사 남편까지 가진 이리스의 삶은 언뜻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매일 저녁 텅 빈 집에는 오직 자신이 만들어내는 소음만 울리고,
‘의사 부인’ 소리가 싫어 억지로 다니고 있던 은행에서는 단 한 번도 성취감을 느껴본 적 없다.
남들 앞에서만 다정한 남편, 취미로 바뀐 일생의 꿈…….
보람이라곤 없는 삶에서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인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이 날아든다.
책 소개글을 읽고,
최근 1-2년동안 꾸준히 화제에 오르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의 프랑스판을 기대했다.
보수적인 부모님이 몰래 자신의 꿈을 짓밟고
그들의 기준에 완벽해 보이는 "의사 부인"으로서의 인생으로 밀어넣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이리스가
부모와 남편으로부터 독립해서 자신만의 꿈과 인생을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
나 또한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
연년생 남동생과 연이어 입시를 치루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모님의 은근한 강요로 원하던 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던 아픔까지 있었기에
주인공 이리스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기대될 수 밖에 없었다.
나름 대리만족을 기대했달까.
(요즘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들 딸 구분없이 키우고 능력에 따라 지원해주는 분위기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여자아이들은 그저 적당히 시집가기 좋은 간판만 따면 된다'고들 생각했으니...)
이리스는 본인의 꿈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역경을 이겨낼 것이며, 어떤 성공을 이루어 낼까?
몹시 기대하고 책장을 넘겼지만
이리스의 행보는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딸의 합격통지서를 태워버릴 정도로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부모에게 분노하여
자신의 인생을 찾겠다며 찾아간 아틀리에에서는
또다른 강압적인 부모와도 같은 존재, 마르트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저 마르트에 의해 <키워지는> 이리스만 있을 뿐....
게다가 마르트의 애인(?)인 가브리엘과 남편 피에르 사이에서 방황하기까지 하는 이리스의 모습이
몹시 안타까웠다.
마지막까지도 이리스의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심리학자인 저자는
부모에 의해 평생을 길들여진 관계적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지극히 '프랑스스러운' 전개와 결말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리고, 기대했던 그런 내용(페미니즘 도서)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져 있던 아쉬움의 마음도 추스르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인가'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누군가의 아내와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아가고 있는 현재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었던,
여러모로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 이 서평은 도서출판 밝은 세상이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선정되어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