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참 재미난 경제학 책을 읽었다. 경제학 책이 이렇게 술술 읽힐 수 있는가. 사실 이 책은 경제학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경제학 책이라면 으레 등장하는 복잡한 수식이나 도표는 물론이거니와 머리를 지끈하게 만드는 고상한 이론들마저 등장하지 않는다. 또 이 책이 쉬이 읽히는 다른 이유로는 심리학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한 내용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사랑이나 미움,기쁨이나 슬픔 같은 인간의 체취가 완전히 제거된 존재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물질적 측면일 뿐이며, 그는 오직 물질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경제적 인간의 전형으로써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합리성(rationality)이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둘째는 이기심(self-interest)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남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전통경제학은 이 두 가지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36.5 인간의 경제학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이 과연 완벽히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실로 터무니 없는 소리다.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하루에 즉흥적이거나 운에 의지한 선택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른다. 사람의 행동은 관찰할 수 있지만 사람의 머릿속은 들여다 볼 수 없다. 전통경제학 이론이 현실과 괴리감을 갖게 되는 중대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경제학이 있다. 행태경제이론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인간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다양한 케이스에서 나타나는 행위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즉 사람냄새가 나는 경제학을 지향한다. 이 책의 제목이 36.5 인간의 경제학인 이유이기도 하다.
“휴리스틱 : 현실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먹구구식 원칙. 지적 능력과 정보의 부족을 메워주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음.”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면 우선 그와 관련하여 완벽한 정보와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논리적으로 따져 보고 경정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인간 개개인들이 때마다 완벽한 정보를 갖추고 고심 끝에 판단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배움,직업,환경,성격 등이 다 제각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휴리스틱, 즉 어림짐작 또는 주먹구구식으로 판단해 버리고 만다. 조금만 계산해봐도 뻔한 문제들 조차 말이다. 때로는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에 의지해 판단하기도 한다.
주식투자에서 대박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투자한다면 대박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주식에는 각 종목마다 기본가치가 있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그 기본가치에 견주어보아 가격이 싸면 사들이고, 가격이 비싸면 팔아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모든 주식이 기본가치를 기준으로 크게 벗어나질 못하게 되고 대박의 가능성은 차단되게 된다. 때문에 기본가치보다 크게 낮은 주식을 사들여 대박을 터뜨리는 것은 모든 투자자들이 다 합리적이진 않다라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이 된다.
사실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행태경제학이 시초가 아니다. 그 유명한 존.M.케인스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론, 즉 자신감,공정성,부패,화폐착각,이야기라는 다섯가지 요소를 통해 처음으로 설명했으나, 기존의 경제학자들에게 철저히 외면 받고 말았다. 근래에 들어 케인스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으나, 이것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케인스가 거론 된 것이지(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 케인스의 심리학적 분석 때문은 아니다.
행태경제학의 역사는 이제 10년 남짓 되었다. 책의 저자인 이준구교수도 전통경제학자이지만 이제서야 행태경제학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고백한다. 바로 인간의 본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태경제학의 매력 때문이란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행태경제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널리 알려야 하는 목표와 이유가 있다. 전통경제학이 기존에 설명해주지 못했던 부분을 속 시원히 말해주는 것 이외에도 정책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그에 맞는 정책의 틀을 짠다면 지금과 같은 낭비를 줄이고 더욱 효율적이고 또 인간적인 정책들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