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요정, 국민 유모차처럼 꿈에도 국민 꿈이 있다고 하면 비약이 좀 심할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남들처럼 적당하게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기도 낳고 사는 것. 이처럼 우리의 머릿속에는 늘 남과 나를 비교하는 저울이 있다. 자녀의 점수가 70점이라고 그냥 말하는 것보다 “다른 아이들은 60점인데” 라는 서두를 붙일 때 엄마의 뇌에서 도파민이 더욱 많이 분비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지 않은가. 열 세 살 진호의 눈으로 본 세상은 늘 마음의 저울을 남에게 올려놓고 행복을 셈하며 울다 웃다 하는 어른들로 가득하다. 가고 싶지 않은 학원을 억지로 보내면서 학원비를 버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엄마, 무엇이 훔쳐갔는지도 모르면서 도둑 맞은 황금기를 아까워 하는 아빠, 허름한 차림에 직업도 없이 사는 삼촌, 자전거 타는 게 뭐라고 50만원이나 내고 온 각양각색의 이해 불가능 한 어른들.
진호는 어른의 셈 법 바깥에 있는 존재다. 이해 할 수 없는 게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처럼 게임 판 밖에 있는 존재인 삼촌을 찾아간다. 진호에게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낳지 않는 삼촌을 찾아가는 행동은 단순한 반항심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삼촌은 그런 진호를 안락한 조수석에서 끌어내어 자전거를 타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부모가 정해 놓은 공식대로만 살아야 하는 것을 거부한 진호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제시 해 준 것이다. 진호는 심부름만 잘 하면 충분했던 수동적인 아이의 삶에서 자신의 두 다리로 페달을 밟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능동적인 어른의 삶으로 넘어갔다. 진호의 허벅지는 “좋은 에너지 나쁜 에너지를 가리지 않는” 엔진이다. 진호의 분노와 외로움을 연료로 “하얀 선 위에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엔진이 돌아가는 동안 진호는 번뇌를 사르고 고통의 출발선이 어디쯤 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규칙 바깥에서 낙오자처럼 어슬렁거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규칙에 얽매여 고통 받고 사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진호는 엄마와 아빠에게도 이 새로운 묵상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졌다. 대화나 가출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 육체적 한계에 내동댕이 쳐 지면 오히려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며동료애가 생긴다는 것을, 진호는 이미 배운 것이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아파트 불빛 같지만 이불 한 꺼풀만 들춰보면 그 속에 저마다 눈물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친구 15기 멤버들의 수 만큼 말 할 수 있는 고민, 말 하기조차 힘든 고민이 있다. 진호가 영은이 누나 한테만 살짝 말하고 싶었던, 그런 내밀한 고민들. 자전거 여행 첫 날부터 서로를 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서로를 알기 전에 우선 자신과 대화한다. 자신의 한계를 먼저 깨 닫게 된다. 두 바퀴 자전거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이해 받고 싶어하고 이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선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나 자신에게 이해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남에게 사랑 받기 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사랑 받고, 남을 사랑하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을 어여삐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세상의 토대다. 모든 이해와 감정의 시작점이고 끝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사이 좋게 지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리고 내 마음을 가장 잘 들여다보게 해주는 두 바퀴 돋보기, 바로 자전거라 할 수 있다.
차르르 도는 바퀴 위에 앉아서 기계적으로 다리를 굴리면 평범한 풍경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귓가에는 바람의 음악이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