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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rrkak님의 서재
  • 유령의 시간
  • 김이정
  • 15,120원 (10%840)
  • 2024-09-23
  • : 1,35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령의 시간

진심이었다면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

프롤로그는 남북작가대회 작가단 방북을 한 지형이 “그들”을 찾는 것을 시작된다.

한때 목숨을 걸었던 신념과 열정에 보기 좋게 배반당한 이섭.
첫 결혼에서 아내와 세 자녀를 전쟁 통에 잃고 그 일로 어머니는 사망,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고, 두 번 째 결혼에서는 막내 딸을 병으로 잃은 기구한 운명의 남자.
숙부들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보탠 집안이지만 이섭은 제대로 된 취직도 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이섭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첫 결혼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들을 잊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아내와 아이를 넷이나 낳고..

“유령의 시간”은 이섭이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느 쪽에서도 마음을 주지 못하며 살아온 시간을 뜻한다. 아버지가 남긴 글을 40년 만에 딸 지형이 내놓은 것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이섭은 아내 미자를 두고도 영석이 엄마와도 정을 주고 받는다.
어쩌면 이섭 역시 자신이 갇힌 감옥을 그녀 앞에서 가끔 내려혼은 채 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p.193)
죄책감이란 없는 것인가?
허울 뿐인 이상주의자.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다.
본인만 최선을 다한다고 그것이 최선인가?

혼인한 지 세달만에 남편을 잃은 미자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이섭의 아이를 넷이나 낳았지만 그 첫정을 잊을 수 있을까?
상처와 상처가 만나면 더 큰 상처가 될 뿐이지 아물 수 있을까?

차라리 이섭은 첫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 하며 혼자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럼 저 녀석이 뭘 할 수 있겠어?공무원이나 선생을 할 수 있겠어,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갈 수가 있겠ㅇ어?취직은 꿈도 못꿀 일인데 장사나 해야지. 저 녀석이 내 아들인 이상 남들처럼 평범한 삶은 어림도 없어.”(p.109)
알면서도 자식을 넷이나 더 낳다니. 너무 이기적이야.

하지만 격변하는 현대사를 살아온 이섭을 욕할 수만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냈지 않은가.

허약한 것들의 비루함이라니. 생각해보면 허약한 자신에 대한 이섭의 적의는 제법 뿌리가 깊었다(p.45)
그리움이 만들어낸 상상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졌다. 이섭은 어느새 새벽마다 바닷가에 나가 혹시라도 올지 모를 그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p.92)


제목에서 느껴지듯 뭔가 흐릿하고, 어둡고, 음울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으나 기구한 이섭과 미자의 삶.
등장인물들의 삶이 애잔하여 가슴이 아렸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같은 이섭과 같은 아버지이지만 웃으면서 봤었는데, 같은 소재가 이리도 가슴아프게 쓰여질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념이란 참으로 “유령”같이 않은가?
실체는 없으면서 누군가는 이념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하고..살아내는 데는 이념이 하등의 쓸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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