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성인 여자들 중 자신의 민낯에 자신만만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책의 제목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건 창피함과 용기가 수반되는 일이다. 그런 민낯인데, 하필 엄마의 민낯이라니!
책을 읽어내려가며 왜 민낯이란 단어가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러면서 또 다른 단어 또한 떠올랐다. 레지스탕스! 저자는 사회가 부여하는 엄마의 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남자들 아니 여자들 조차 암묵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그 상에 '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읽는다. 쓴다. 이왕이면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조목조목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반육아서라 지칭하는 책을 읽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물음표와 마침표에 대해서 쓴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보수적인 남편을 만나 보수가 낳은 불합리함을 당연시 여기고 살던 나에게는 저자의 수많은 문장이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내가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그 불합리함 속에서 살고 있었고, 우울하고 화가나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그저 독박육아라 그래, 핵가족이라 그래, 육아독립군이라 그래라며 내가 처한 상황을 단순화 시키고, 그 단순함 속에서 이유 모를 분노를 삼켰다.
여자에게 육아의 책임이 과중되는 사회의 불합리함, 남자들이 육아와 집안일에 대해 갖는 생각의 불합리함에 저항하기 위해 저자는 치열하게 싸운다. 특히 남녀 통틀어 육아휴직 전례가 없는 회사의 직원인 남편을 결국 첫 육아휴직자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싸움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결과에 감탄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남편과 싸우는 과정 속에서 나오는 문장들이 놀랍다. 나도 몰랐던 내 무의식이 문자화 되었다는 것이 특히 놀라웠다. 내가 감탄했던 저자의 문장을 몇개 소개해본다.
집은 누군가는 일만 하고 누군가는 쉬는 장소가 아니다. 한 명이 쉬기 위해선 한 명이 그만큼의 몫을 채워야 굴러가는 공간이 집이다.
밥 차려줘 고맙다는 말을 들어도 부족할 판에 차려 준 밥 잘 먹어줘 고마워 해야 하고, 시킨 걸 잘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듣기는 커녕 시킨 거라도 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니. 아내에겐 '시키는 노동', '칭찬 노동', 이중의 감정 노동을 부과한다.
집에서의 무능력이 직장에서의 무능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나를 보면 열이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그에게 진심 어린 걱정으로 물어봤다. "혹시 회사에서도 이래?"
집에서 남편과 부딪히는 문제는 신입사원이 한 달 안에 익힐 수 있는 업무를 3년 차 혹은 7년 차 된 대리나 과장에게 날마다 가르쳐주는 번거로움과 비슷했다.
우린 또 부딪힐 테고 절망할 테고 상처 줄 테다. 하지만 힘이 닿는 한 포기하지 않고 싸우기로 한다. 아늑한 포기 속에 살기보다 팽팽한 불화를 견뎌내며 살기로 한다. 원망하거나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과 말로, 행동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하고, 그런 언어를 통해 남편과의 끊임 없는 조정의 시간을 겪은 뒤 결국 주말의 자유시간을 확보한다. 나아가서 남편의 육아휴직까지.
함께 낳은 생명에 대한 연대 책임을 뒤로하고 책임을 오로지 여자에게만 요구하는 사회와 사람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내 힘듦을 본인의 더 힘들었음으로 깔아 뭉개던 엄마.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기쁘지만, 결코 재밌지 않은 육아.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치열히 물음표를 던지고, 끝없는 성찰과 읽고 씀으로 인해 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나를 둘러싼 모든 불합리함에 왜라고 질문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발자국이라도 내디뎌야 엄마를 존중하는 사회가 도래함을...
저자는 책에서 끊임 없이 강조한다. 엄마가 자기만의 언어를 가져야 함을.
내 생각에는 모든 것을 통틀어 육아만큼 강한 유대감을 가진 공동의 기억은 없다. 남자들의 군대에 대한 기억도 육아만큼 그리 비슷하지는 못할 것이다. 속도와 순서, 성격이 다를 뿐 거의 비슷한 단계로 아기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존재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유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경험하는 육아는 분명히 다르다.
오직 지금 나만이, 내 언어만이 나의 육아에 대한 서사를 표현할 수 있다. 그 어떤 육아서도 나의 육아 서사와 같을 수 없다. 아기가 있고, 내가 있는 그 서사를 위해 나는 내 머릿 속 샘물에서 길어내는 나만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내 상황을 내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했을 때 느끼는 통쾌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두루뭉술했던 사고가 순간 명료해지며, 상황에 대한 이해는 결국 내 삶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나 또한 저자처럼 누구나 자기만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생각했던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엄마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힘든 육아 속에서 매일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엄마에게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삶을 서사화한다는 건 회복이자 치유이다.
엄마여, 당당히 민낯을 드러내고 당당히 내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말하자. 내 언어로 만들어낸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도 있음을!